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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한국의 금석문
- 분류 고전자료 금석문자료
대동법시행기념비(大同法施行記念碑) 조선시대 1659년(효종 10) 대동법시행기념비는 1659년(효종 10)에 김육(金堉)이 삼남지방에 대동법을 실시하면서 균역하게 한 공로를대동법은 각 지방의 특산물로 내던 공물(貢物)의 폐단을 막기 위해 제정되어 1608년 경기지방에서 처음 실시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1651년 영의정 김육은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하기 위해 상소하여 효종의 윤허를 얻었다.지난 만력(萬曆) 무신년(1608: 선조 41)에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 문충공(文忠公)이 처음으로 기보(織輪)에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여 기보의 백성들이 되살아났다.대동법은 실로 백성들에게 큰 공헌이니 어찌 하나의 하천에 다리를 세워 지나는 길손들을 건너게 한 것에 비견될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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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포저집(浦渚集)
- 작성자 조익(趙翼)
- 분류 고전자료 고전국역서
대동법(大同法)을 논한 계사이상현조익(趙翼)대동법을 실시하기로 한 것은 당초에 영의정(領議政) 신(臣) 이원익(李元翼)의 의론에서 나온 것인데, 이에 대한 절목(節目)을 헤아려 정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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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每日申報
- 분류 근현대자료 연속간행물
大東법률학교 발전每日申報社KH.NLOP.nlop_misb每日申報21916-04-21image2018-11-03 00:00:00.0001900-01-01 00:00:00.0002019-03-07 00:00:00.000위치 : 2면 6단 기사구분 : 기사 초록 : 李冕宇(대동법률학교 교감) 국립중앙도서관 분류번호 : 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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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每日申報
- 분류 근현대자료 연속간행물
00:00:00.0001900-01-01 00:00:00.0002019-03-07 00:00:00.000위치 : 2면 5단 기사구분 : 기사 초록 : 조중응(사립대동법률학교장, 자작), 이종하, 中野(보안과장), 具(경무관), 정의선, 정낙붕, 한기홍, 나우건, 나성찬, 김영순, 최영환, 황정익, 민병렬, 박성목, 이필구, 신각균, 사립대동법률학교, 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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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국가기록영상
- 분류 멀티미디어자료 동영상자료
e영상역사관 기록영상DB 분야별기록영상 문화유적기행(경기) : 화성,평택 1분 27초 화성,평택,용주사,정도전 위패,대동법 시행 기념비 1989년 200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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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멀티미디어자료 이미지
소장:京城帝大 附屬圖書館, 현 규장각忠淸道大同事目조선 후기 대동법 실시에 따른 시행세칙으로서, 1608년 이원익의 건의에 따라 경기도에서 실시한 이래로 충청도에는 1651년에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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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진각
- 분류 사전ㆍ공구 기타
대동법시행기념비 대동법시행기념비 大同法施行記念碑 정진각 대동법|김육(金堉) 유적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조선후기대동법 시행 기념비.이 비는 1659년(효종 10)에 김육(金堉)이 충청감사로 있을 때 삼남지방에 대동법을 실시하면서 백성들에게 균역(均役)하게 한 공로를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하여 삼남지방을 통하는길목에 설치한 것이다.원래 대동법은 1608년 경기에서 처음 실시되었다.[내용]1651년 영의정 김육이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충청도에도 대동법을 시행토록 상소하여 효종의 윤허를 얻어 실시함으로써 국가 재정을 정비하고 민폐를 덜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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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조선왕조실록사전
- 작성자 박도식
- 분류 사전ㆍ공구 기타
대동법 대동법 大同法 공납제(貢納制) 경대동(京大同), 사대동(私大同) 방납(防納),한영국, 「호남에 실시된 대동법(상): 호서 대동법과의 비교 및 첨보」, 『역사학보』 15, 1961.한영국, 「호남에 실시된 대동법(2): 호서 대동법과의 비교 및 첨보」, 『역사학보』 20, 1963.한영국, 「호서에 실시된 대동법(상): 대동법 연구의 일착」, 『역사학보』 13, 1960.한영국, 「호서에 실시된 대동법(하): 대동법 연구의 일착」, 『역사학보』 14,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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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전상욱()
- 분류 연구성과 기타
oai:kci.go.kr:ARTI/1010312117세기 전반 강원도 대동법의 시행과 운영Enforcement and operation of the Daedong-law(大同法) in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여 본 연구는 17세기 전반 강원도 대동법을 주목하였다.강원도 대동법은 인조 즉위 직후 삼도대동법과 함께 시행되었다.이는 대동법 시행을 계기로 공납물 부담이 감소한 점, 대지주와 같은 대동법 반대세력이 적은 점이 반영된 것이다. 강원도 대동법은 결당부과액을 16두로 책정하였다.이는 강원도지역의 공물가 총액과 전결수를 고려하여 삼도대동법 시행 당시 전라․충청도지역에 비해 1두 높게 책정한 것이다.이처럼 강원도 대동법 운영방식은 삼남지역과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이러한 강원도 대동법의 운영방식은 18세기에 대동법 재정비를 위한 양전 시행과 잡역상정을 촉발시켰다.The tribute system was a system to secure va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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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학삼(김해대학교)
- 분류 연구성과 기타
oai:kci.go.kr:ARTI/6264384왕의 즉위와 대동법 시행에 관한 연구A Study on The Throne of Kings and Implementation of Daedongbeop왕의즉위와 대동법 시행에 관한 연구최학삼(김해대학교)국제문화기술진흥원문화기술의 융합, 5(4), , pp.147-155ART0025280370Y2384-03582384-0366Article광해군즉위 후의 경기대동법(선혜법), 인조 즉위 후의 강원도대동법, 효종 즉위 후의 충청도 및 전라도 대동법의 시행은 새로이 즉위한 왕에게 기대를 걸어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개선시키려그러나 이 세 왕의 즉위 후 시행된 대동법은 그 시행과 관련하여 큰 위기에 당면하게 된다.시행과 관련된 위기의 차이점은 광해군 때와 인조 때의 대동법은 시행결정 후 시행은 즉시 이루어졌으나 얼마 안가서 폐지위기에 놓였다는 것이고, 효종 때의 충청도 및 전라도 대동법은 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