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策勳名良妻明鑑 光海末 平壤有一妓女 年十六七 貞潔持身 無倚市之態 穿踰之行 以爲妓雖賤物 當守一夫以終身 營本府裨將冊客 悅其姿色 每欲近之 而萬不聽從 以至刑之杖之 枷囚父母 而終不變移 營邑上下 無不稱之以怪物焉 其父母 每求其作夫者 厥妓曰 「夫者百年之客 吾自擇之」 此言一播遠近 聞風而來者 莫非美男子好風身豪富之類 日夕盈門 而厥妓一幷不許之 一日 厥妓坐大同門樓 見門外有負柴老總角 呼其父語之曰 「必邀致吾家也」 其父見之 不覺寒心 責之曰 「汝之心情 異常矣 汝之姿色 莫不慕悅 上可以爲使道本官別室 中可以爲戶裨冊客之隨廳 下不失某家郞某家郞 而一幷不願 欲得天下凶惡寒乞兒者 是何心腸」 然旣知其女之性情 雖以其父之威 亦無可柰何 乃邀厥童而作夫 伊後 厥女謂其夫曰 「吾輩不可久住於此 願與君上京 作産業也」 遂與之上京 設酒店於西門外 以色酒家 爲長安第一 城內外豪貴之徒 無不輻湊 其時有酒徒五六人 往來飮之 厥女不計價之有無 必如令進排 酒債夥然 一未備償 其酒徒 或言以無廉 則女曰 「後日多償則好矣 何必乃爾」 其酒徒 卽墨洞金正言李佐郞輩也 厥女從容言於金正言曰 「此洞自多生踈者 將移南村而居 惟望進賜主作主人也」 金曰 「好矣 吾輩之遠來飮酒 亦爲良苦 爾若近來 則吾輩必善 作主人也」 厥女仍移于墨洞 一日 見金正言〃曰 「吾之夫 目不識丁 亦不解諺文 至於酒債之記錄 每多貿〃 幸望進賜主 以蒙學敎之 則當待以先生 一日一壺酒 進排矣」 金曰 「好矣 自明日食前 挾冊送之也」 厥女使其夫 買通鑑第幾卷 貼標其中間曰 「君挾此冊 往金正言宅 請敎時 先生必欲自初張敎之 君則必以此標張請敎 毋從其言也」 其夫依其言 翌朝挾冊往學 金正言曰 「千字乎 類合乎」 曰 「通鑑第四卷矣」 金曰 「是不當於汝 須持千字文以來」 厥者曰 「旣已持來 願學此冊」 金曰 「此亦文也 亦何妨乎」 自初張敎之 則厥者以手開貼標處曰 「願學此貼標處」 金正言曰 「必以初張敎之」 厥者終不聽 以標張固執 金正言不勝憤 以卷打擲曰 「天下不出漢也 都聽其妻之言也」 厥者大怨而歸 語其妻曰 「此後勿給金正言酒也 糧且不給 而瓢亦破矣」 婦莞爾而語曰 「君之人物若善出 則豈有此辱」 少焉 金正言來 執厥女手曰 「汝人耶鬼耶」 女曰 「如吾者類 得時爲兩班 不亦可乎」 金曰 「且俟之」 仍呼酌酒 盖其所貼標處 乃霍光送昌邑王事 而所謂金正言 卽昇平府院君也 李佐郞 卽延陽也 厥女攄得其反正議將成故 〃將通鑑第四卷 先試其意 而昇平亦已知厥婦已料自己所謀之事也 數日 昇平諸公 果反正 及其論功時 先以平壤妓酒債言之 諸議莫不僉同 詢其夫之名 無有知之者 昇平曰 「吾聞厥者 己丑生也 以六甲名之 則太不雅 以起字築字 作名何如」 僉曰 「諾」 錄於三等勳 卽除漢城左尹 終爲兵曺叅判云〃
광해(光海) 말에 평양(平壤)에 한 기녀(妓女)가 있었는데, 나이는 16, 7세 가량이었다. 정결하게 몸가짐을 하여 의시(倚市)[의시(倚市): 의시문(倚市門) 혹은 의문매소(倚門賣笑)의 준말. 문에 기대 웃음을 판다는 뜻으로 옛날에 기녀(妓女)의 생애를 칭할 때 쓰이던 말.]의 자태나 벽에 구멍을 뚫고 담장을 뛰어넘어 남자와 놀아나는 행동이라곤 없었으며, 기생이 비록 천한 것이지만 마땅히 한 지아비에게 정절을 지켜 종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평양 감영 본부의 비장과 책객들이 그녀의 자색에 반하여 매번 그녀를 가까이 하고자 하였으나 만에 한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심지어는 그녀에게 형벌을 가하고 몽둥이로 때리고, 그녀의 부모에게 칼을 씌워 가두어 놓기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끝내 태도를 바꾸지 않았으므로 감영읍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괴물이라고 칭하였다. 그녀의 부모가 남편될 사람을 매번 구할 때마다 기생은 말하였다. “지아비는 백년손님이니 제 자신이 선택하겠습니다.” 이 말이 원근에 한번 전파되자 풍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 미남자, 풍채 좋은 자, 부호의 부류 아닌 자가 없었다. 아침 저녁으로 이런 사람들이 기생집 문전을 가득채웠는데도, 기생은 한결같이 이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하루는 기생이 대동문(大同門) 누각에 앉아 있다가 문 밖에서 떌나무를 지고 있는 노총각을 보더니 자기 아버지를 불러 말하였다. “저 사람을 반드시 우리 집으로 맞이하십시오.” 그녀의 부친은 총각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한심하여져 그녀를 책망하며 말하였다. “너의 심정은 참 이상도 하다. 너의 자색을 사모하여 반하지 않는 자 없으니, 위로는 사또본관의 별실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호장과 책객의 수청을 들 수 있을 것이고, 아래로는 아무개 댁 서방님, 아무개 댁 서방님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인데, 이들은 한결같이 모두 원하지 않고, 천하에 흉악한 보잘 것 없는 걸인을 얻고자 하니 이 무슨 심보냐? ” 그러나 비록 그녀 부친의 위세로도 딸아이의 성정을 또한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이에 그 걸인 녀석을 맞아 남편으로 삼아 주었다. 그 후 여자가 자신의 남편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이 곳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서방님과 같이 상경하여 산업(産業)을 하고 싶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더불어 상경하여 서문(西門) 밖에 주점을 열어 색주가(色酒家)로 장안 제일이 되었다. 경성 안밖의 호탕하고 부귀한 무리들이 폭주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 때 주당 5, 6 명이 왕래하며 술을 마셨는데, 그 여자는 그들이 돈이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않고 명령하는 대로 반드시 술을 갖다 바쳤다. 그들은 술빚이 많았으나 한번도 그 빚을 다 갚은 적이 없었다. 그 주당 중 혹자가 염치없노라고 말을 하면 그녀는 말하였다. “후일 많이 갚아주시면 됩니다. 어찌 이러십니까?” 그 주당은 묵동(墨洞) 김정언(金正言), 이좌랑(李佐郞) 무리였다. 그녀가 조용히 김정언에게 말하였다. “이 동네는 저에게 생소한 자들이 많으니 남촌(南村)으로 옮겨 거처하려고 합니다. 오직 바라옵건대 나으리가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김정언이 말하였다. “그것 좋으이. 우리들도 멀리 와 술 마시는 것이 상당히 고생스러웠네. 자네가 만약 가까이 온다면 우리들이 반드시 좋은 주인이 되어주겠네.” 여자는 곧 묵동으로 이사하였는데 하루는 김정언을 보고 말하였다. “저의 남편은 목불식정(目不識丁)인데다가 언문도 해득하지 못하였습니다. 술빚을 기록하는 것까지도 매번 분명치 않은 구석이 많으니 바라옵건대 나으리께서 어린애 공부 수준으로 가르쳐주십시오. 가르쳐만 주신다면 제가 마땅히 선생으로 대접하여 하루에 한병의 술을 바쳐 올리겠습니다.” 김정언이 말하였다. “좋으이. 내일 식전에 책을 들려서 보내게.” 여자는 남편에게 통감(通鑑) 제 몇 권을 사오게 하더니 그 중간 쯤에 표를 붙이며 말하였다 “서방님께서는 이 책을 가지고 김정언 댁에 가서 가르침을 청하십시요. 그 때 선생께서 반드시 처음 장부터 가르치려고 하시더라도 서방님은 반드시 이 표를 붙인 장부터 가르쳐 달라고 청하셔야지 그의 말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남편은 부인 말에 따라 다음 날 아침 책을 끼고 배우러 갔다. 김정언이 말하였다. “천자문(千字文)이냐? 유합(類合)[유합(類合): 조선조 때의 한문(漢文) 학습서. 9대 성종 때 서거정(徐居正)이 지었다 함. 《천자문》과 《훈몽자회(訓蒙字會)》와 같이 각 자(字)마다 음과 훈을 달았음. ]이냐?” “통감 제4권입니다.” 김정언이 말하였다. “이 책은 너에게 당치도 않으니 천자문을 가지고 오너라.” “이왕 가지고 온 것이니 이 책을 배우기 원하옵니다.” “이 책도 또한 글일지니 방해될거야 없겠지.” 첫 장부터 가르치자 그녀의 남편은 표 붙인 곳을 손수 펼치며 말하였다. “표를 붙인 곳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김정언이 말하였다. “반드시 첫 장부터 가르쳐 줄 것이다.” 남편이 끝내 김정언 말을 듣지 않고 표 붙인 장을 고집하니 김정언은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책으로 후려치며 말하였다. “천하에 불출한 놈이로고! 도무지 지 마누라 말만 듣는구먼.” 남편은 크게 원망하며 돌아가 처에게 말하였다. “이후로는 김정언에게 술을 주지 마오. 동냥도 안 주면서 표주박까지 깨트리는 격이니…” 부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서방님의 인물이 만약 잘났다면 어찌 이 같은 모욕을 당했겠습니까?” 조금 있으니 김정언이 와서 그녀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너는 사람이냐? 귀신이냐?” 그녀가 말하였다. “우리 같은 무리들도 때를 만나면 양반이 되는 것이 또한 가하지 않겠습니까?” 김정언이 말하였다. “잠시 기다리게.” 그리고는 술을 따르라 하더니 마셨다. 그런데 그녀가 표를 붙였던 곳은 곽광(霍光)[곽광(霍光): 전한인(前漢人). 무제(武帝)의 유조(遺詔)를 받들어 대사마 대장군(大司馬 大將軍)으로서 소제(昭帝)를 도왔으며, 다음 창읍왕이 음란하므로 그를 폐위시켜 중기(中期)의 정치실력자 선제(宣帝)를 세웠음.]이 창읍왕(昌邑王)을 축출하는 기사였으며, 이른바 김정언이라는 자는 승평부원군(昇平府院君)[승평부원군(昇平府院君): 김유(金瑬). 앞에서 나온 주 참조.]이었고, 이좌랑은 연양(延陽)[연양(延陽):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를 가리킴. 이귀(1557-1633)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옥여(玉汝)이고 호는 묵재(黙齋). 김유(金瑬), 신경진(申景禛) 등과 1623년 3월에 광해군을 몰아내고 선조의 손자인 능양군(綾陽君) 종(倧)을 왕으로 추대. 인조반정에 성공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에 책록되었고 그 뒤 연평부원군에 봉해졌음.]이었다. 여자는 반정(反正)의 의론[반정의 의론: 나쁜 임금을 폐하고 새 임금을 세워 나라를 바로잡자는 의론으로, 1623년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를 옹립하려는 의론을 의미.]이 일어나 장차 성사되리라는 것을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통감 제4권을 가지고 먼저 그 뜻을 시험해 보았던 것이고 승평 또한 이미 그녀가 자기들이 모의하고 있는 일을 미리 헤아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수일 후에 승평과 제공(諸公)이 과연 반정을 하였고 논공(論功)할 때를 당하여 먼저 평양 기생의 술빚을 말하자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녀 남편의 이름을 물으니 알고 있는 자가 없었다. 승평이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그자는 기축생(己丑生)이라더군. 육갑(六甲)으로 이름을 하면 너무 좋지 못하니 기(起)자 축(築)자로 이름을 지음이 어떻겠는가?” 모두 말하였다. “좋소.” 그리하여 그녀의 남편은 3등 훈에 기록되었고 곧 한성(漢城) 좌윤(左尹)을 제수 받았으며 마침내는 병조참판(兵曺參判)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