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자료ID
0009_006_170
총서명
청구야담(靑邱野談)
권책
6권
저자
미상
역자
시귀선, 이월영

원문정보

赴浿營婦人赦名妓

泰億之妻沈氏 性本猜妬 泰億畏之如虎 未常有房外之犯矣. 其兄泰耈之爲箕伯 泰億以承旨 適作奉命之行 留營幾日 始有所眄之妓. 沈氏聞其由 乃卽地治行 使其娚陪行 而直向其營 將欲打殺其妓. 泰億聞其狀 失色無語. 泰耈亦大驚曰 「此將奈何?」 欲使其妓避之 其妓對曰 「小人不必避身也. 自有可生之道 而貧不能辦矣.」 泰耈問其由 對曰 「小人欲飾珠翠於身 而無錢恨矣.」 泰耈曰 「汝若有可生之道 則雖千金吾自當之 唯汝所欲可也.」 仍使幕客 隨所入得給云 而中和黃州出送裨將而問候 且送廚傳而支供矣.
沈氏之一行 到黃州 則云「箕營裨將之來待 且有供之待者」 乃冷笑曰 「吾豈大臣別星行次 而有問安裨將乎? 且吾之路需優足 何用支供爲也?」 幷使退出 到中和 又如是 斥退. 
發行過栽松院 將入長林之中 時當暮時 十里長林 春意方濃 曲曲見淸江景物頗佳 沈氏蹇轎簾而賞玩. 過長林 林盡而望見 則白沙如練 澄江似鏡 粉堞周繞於江岸 商船紛集於水上 練光亭大同門乙密臺超然 臺之樓閣丹靑照曜 屋宇縹緲 奪人眼目. 沈氏嗟嗟曰 「果爾絶勝之區 名不虛傳矣.」 
且行且現之際 遠遠沙場之上 忽有一點花 渺渺而來 近則一介名妓 綠衣紅裳 騎一匹綉鞅驄 橫馳而來. 心甚怪之 駐馬而見之 及近 其女子下馬 而以鸎聲唱諾曰 「某妓請謁.」 沈氏聞其名 而無名業火 衝起三千丈矣. 仍大聲叱責曰 「某妓某妓渠何爲來謁? 第使立之于馬前.」 其妓斂容 而敬立馬前. 沈氏見之 則顔如含露之桃花 腰似依風之細柳. 羅綺翠珠 飾其上下 眞是傾城之色. 沈氏熟視曰 「汝年幾何?」 曰 「十八歲矣.」 沈氏曰 「汝果名物矣. 丈夫見此等名妓 而不近則可拙夫矣. 吾之此行 初欲殺汝 旣見汝則名物也 吾何必下手也. 汝可往待吾家令監 而令監炭客也 若使之沈惑而生病 則汝罪當死 愼之愼之.」 言罷仍回馬向京城. 
泰耈聞之 急走伻傳喝 「嫂氏行次 旣來到城外 而不入城何也? 願暫入城內 留營中幾日 而還行可也.」 沈氏冷笑曰 「吾非乞駄客也 入城何爲?」 不顧而行 還京第.
其後 泰耈 招致其妓而問曰 「汝以何大胆 直向虎口 而反獲免乎?」 其妓對曰 「夫人之性雖悍妬 而作此行於千里之地者 豈區區兒女輩所可辦乎? 馬之踶囓 省必有其步 人亦如是. 小人死則等耳. 雖避之其可免乎? 故玆凝粧而往拜 若打殺則無可奈何矣 不然則冀有見而憐之之故也」云爾.
조태억(趙泰億)[조태억(趙泰億)(1675: 숙종1-1728영조4): 문신. 자는 대년(大年), 호는 겸재(謙齋). 1693(숙종19)년 진사가 되고, 1702년 식년시(式年試)에 을과(乙科)로 급제,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고, 1721(경종1)년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 이어 호조참판에 전임, 신임사화(辛任士禍)를 일으켜 노론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았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우의정에 승진,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으나, 노론의 논책으로 삭직되었다. 1727(영조3)년 정미환국으로 좌의정에 복직, 이듬해 병으로 사직하고 영돈령부사(寧敦寧府使)에 전임했다. ]의 처 심씨(沈氏)는 본래 성품이 사납고 질투가 많았다. 태억은 그녀를 마치 호랑이처럼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와 정사를 나눈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의 형 조태구(泰耈)가 기백(箕伯)이 되었을 때, 태억이 마침 승지(承旨)로 봉명(奉命)을 받들고 행차하던 차에 기영(箕營)에 며칠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한눈을 팔게 된 기생이 있었다. 심씨가 그 내력을 듣고 그 자리에서 당장 행장을 다스려, 오라비로 하여금 배행(陪行)토록 하고 기영(箕營)으로 직향(直向)하여 기녀를 때려죽이고자 하였다. 
태억이 그 실상을 듣고 얼굴빛이 변하여 말을 못하였다. 태구 또한 크게 놀라 말하였다. 
“장차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기녀를 피신시키려고 하니, 그녀가 대답하였다. 
“소인은 피신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에게는 살아날 수 있는 방도가 있사오나 가난한지라 그 방도를 갖출 수 없을 뿐입니다.”
태구가 그 방법을 물으니, 기녀가 대답하였다. 
“소인은 주취(珠翠)로 몸을 꾸미려고 하는데 돈이 없어 한탄스럽습니다.” 
“네가 만약 살아날 길만 있다면야 비록 천금이 든다 해도 내 스스로 담당하겠으니, 네 하고자 하는대로 하거라.”
태구는 막객(幕客)에게 돈이 들어오는대로 기녀에게 급여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나서 중화(中和)[중화(中和): 평안남도에 있는 지명.]와 황주(黃州)[황주(黃州): 황해도에 있는 지명.]에 비장(裨將)을 내보내 문안을 올리게 하고 또 주전(廚傳)[주전(廚傳): 주포(廚庖)와 역전(驛傳), 즉 음식과 거마(車馬). 지방에 나가는 관원에게 경유하는 역참에서 제공함.]을 준비해 보내어 지공(支供)[지공(支供): 음식물을 이바지함.]하였다. 심씨의 일행이 황주에 도착하니 기영(箕營)의 비장이 와서 문후차 기다리고 있으며, 또 지공(支供)을 가지고 대령하고 있는 자가 있었다. 이것을 본 부인이 냉소하며 말했다. 
“내가 무슨 대신(大臣) 별성(別星)[별성(別星): 조정에서 파견하는 대소관원의 통틀어 일컬음.]의 행차라고 문안 비장이 있으며, 또 나의 노자돈으로도 이미 충분한데 무슨 지공이람!” 
모두 물러나도록 시켰다. 중화(中和)에 도착해서도 또한 이전과 같았으나 모두 물리쳤다. 
재송원(栽松院)을 지나 장차 장림(長林) 속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 때는 늦은 봄을 당하여 십리의 장림에는 봄기운이 짙게 구비구비 서려있어, 청강(淸江)의 경물(景物)이 자못 아름다왔다. 심씨가 가마의 발을 걷고 경치를 완상하며 장림을 지나갔다. 숲을 다 지나 멀리 바라보니, 하얀 모래가 바치 비단결 같고, 맑은 강물은 마치 거울 같았으며, 분첩(粉堞)[분첩(粉堞): 회를 바른 성가퀴.]이 강안(江岸)을 빙 둘렀고, 상선들이 강상에 어지럽게 모여 있었다. 연광정(練光亭) 대동문(大同門) 을밀대(乙密臺)는 초연하였고, 대의 누각 단청이 햋빛에 비치어 빛나고, 옥우(屋宇)가 표묘하여 사람의 안목을 빼앗을 지경이었다. 심씨가 감탄하였다. 
“과연 절승한 곳이로다. 그 이름이 헛되이 전하는 것이 아니로구나!” 
한편으로는 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경하고 있을 때, 멀리 모래밭에서 문득 일점의 꽃이 아득히 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지라 바라보니 일개 명기였다. 그 기생은 녹의홍상(綠衣紅裳)에 비단 안장을 한 한필의 총마를 타고 사장(沙場)을 가로질러 왔다. 심씨는 몹씨 이상하게 생각하고 말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기녀는 가까이 다가 오더니 말에서 내려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하였다. 
“아무개 기생이 뵙기를 청하옵나이다.”
심씨는 그 이름을 듣자 무명업화(無名業火)[무명업화(無名業火): 깨우치지 못한데서 오는 나쁜 마음이나 불처럼 성난 마음.]가 삼천 길이나 충기(衝起)하였다. 인하여 큰 소리로 질책하였다. 
“아무개 기생이라고? 아무개 기생이 무엇 때문에 와서 알현하느냐? 말앞에 세워두어라.” 
기녀가 얼굴빛을 가다듬고 말앞에 공손하게 섰다. 심씨가 보니 안색이 마치 이슬을 머금은 복숭아꽃 같았으며, 허리는 흡사 바람결에 흔들리는 세류(細柳) 같았다. 비단과 비취빛 구슬로 위아래를 장식하고 있는데 진실로 경성지색(傾城之色)이었다. 심씨가 익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네 나이는 몇인고?” 
“십팔세이옵니다.”
“너는 과연 명물이로구나. 장부가 이러한 명기를 보고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졸부라 할만하지. 내가 여기에 행차할 때 처음에는 너를 죽이고자 했다만, 너를 보니 명물인지라, 내 어찌 꼭 죽일 필요야 있겠느냐? 가서 우리집 영감님을 잘 모시도록 하거라. 다만 영감님은 힘없는 노친네이시니, 너무 지나치게 미혹되어 병이라도 나면 너의 죄는 죽어 마땅할 것이다. 삼가하도록 해라. 반드시 삼가하여라.”
말을 마친 심씨는 말머리를 돌려 경성으로 향하였다. 
태구가 이말을 듣고 급히 사자를 달려 전갈하였다. 
“제수씨의 행차가 성밖까지 이르렀으면서 입성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원컨데 잠시 성내에 들어와서 영중(營中)에 며칠 머무르신 뒤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심씨가 냉소하며 말했다. 
“나는 걸태질(乞駄)[걸태(乞駄)질: 염치나 체면을 돌보지 아니하고 탐욕스럽게 재물을 긁어들이는 것.] 하는 객이 아니니라. 입성해서 무엇하겠느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행차하여 곧바로 서울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 태구가 그 기녀를 불러다가 물었다. 
“너는 어떻게 했길래 대담하게도 호랑이 입으로 직향하여 도리어 획면할 수 있었더냐?” 
그 기녀가 대답하였다. 
“부인의 성질이 비록 사납고 질투심이 많으나 천리나 되는 곳에 행차하셨으니 어찌 구구한 아녀배(兒女輩)들이 갖출 수 있는 바이겠습니까? 말이 발길질하고 깨무는 것을 살피면 그 말의 걸음을 짐작할 수 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소인이 죽기는 매일반이었습니다. 비록 부인을 피한들 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짙은 화장을 하고 가서 배알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때려죽인다면 어찌할 수 없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저를 보고 가엾게 여기시기를 바랐었던 것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