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제목
남을 도와주고 나갈 살림을 막은 팔대 만석군
자료분류
설화
조사자
김선풍, 김기설
조사장소
강원도 속초시양양군 양양군 손양면
제보자
이동균
조사지역
강원도

구연상황

이 이야기는 조사자와 제보자가 송전리에 있는 고남재 제보자의 안내로 쿵쿵산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남재 제보자의 집에서 녹음한 것이다. 자리를 바꾼 탓인지 제보자는 기분 좋은 얼굴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야기 도중 밖에서 동네 꼬마들이 떠들어서 녹음 상태가 고르지 못했다.

채록내용

제목: 남을 도와주고 나갈 살림을 막은 팔대 만석군
자료분류: 설화
테이프번호: T. 손양 7 앞
분류코드: [손양면 설화 42]
조사지역: 강원도/속초시양양군/양양군 손양면
조사장소: 금강리
조사일: 1981.11.27
조사자: 김선풍, 김기설
제보자: 이동균(남, 72)
구연상황: 이 이야기는 조사자와 제보자가 송전리에 있는 고남재 제보자의 안내로 쿵쿵산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남재 제보자의 집에서 녹음한 것이다. 자리를 바꾼 탓인지 제보자는 기분 좋은 얼굴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야기 도중 밖에서 동네 꼬마들이 떠들어서 녹음 상태가 고르지 못했다.

예전에 전라도에 팔대 만석군이여. 팔대 만석군 부자가 있었어. 만석군 부자가 있는데, 그집이 인제 늘 전설에 내려오기를,
“저집은 인복이 있어서 늘 부자다.”
이렇게 전설이 내려오거든. 그 인제 팔대 만석군 원 주인이 할아버지가 원 주인이 팔대 만석군이니까 뭐, 저 뭐 목포도 창고가 있고, 부산도 창고가 있고, 소작 받는 창고가 또 뭐, 대전도 있고 또, 뭐 사방 인제 그 창고가 많을 게 아니야. 그집 앞에 있는 창고가 여덟 개여. 응, 여덟 개나 창고가 있는데. 아, 만석꾼 팔대 만석꾼이니까 뭐 뭐 창고가 좀 많겠어. 근데 인제 밤에 잘 적엔 반다시 그집 상노인이 빙 그 저 저 주위에 그 창고 그 부근을 한 번씩 순회하구 이래구 들어와 자거든. 밤마다 들어와 자는데. 한 해는 정월달 쯤 정월 보름께는데, 그 저 달 환하게 인제 걸렸는데, 그 창고 주위를 밤에 잘라구선 인제 창고 주위를 돌아보고 인제 들어와 자야 되겠는데, 돌아보더라니 그집에서 제일 큰 창고 제일 큰 창고 그 문 밲에 쪼끄마한 아이가 아주 홀락 뻣은 게 아주 이쁜 아이가 그 창고 문에서 나오거든. 나오더니 그 주인 보고서,
“난 인저 갈래요.”
그랜단 말이야. 그 주인이,
“하하, 우리집에 늘 참, 자고로 인복이 있어서 참, 부자가 된다고 하더니 쟤가 우리집 인복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너 좀 더 있다 가거라. 왜 벌써 갈라니(갈려구).”
“아, 이젠 나 가야 되요.”
하곤 인홀불견이야. 간 곳이 없아. 그래 줸(주인)이 가만이 들어가 생각해 보니,
“이젠 우리 집에 살림이 나가는 살림이라.”
이 기어 나가는 살림인데, 사람이 돈을 벌 때에는 온 집안 식구가 화목이 되고 재미 있구 이렇게 벌게 되지마는 사람이 돈 자꾸 나갈려 들며는 그 집안에 공연히 우환두 생기고, 괜히 가정적으로 불화 생기구 뭐, 별별 뜻 밖의 참 일이 생겨 가지구 돈이 자꾸 손(손해)보게 되거든. 그래 그 가만히 생각해 보니 팔대 만꾼집 자식들이 말이여. 평소에 뭐, 돈 귀한 걸 알았나 고상(고생)을 한 번 해봤나 뭐, 그저 남한테 대우나 받고, 옛날 소작 그 뭐 시대니까 소작인한테 대우나 받고 이래 봤지, 뭐 누구한테 누구한 사정 한 번 해 본 일이 읍고, 또 돈 정황이 어떻게 된 지 그것도 모르고 살구 전혀 참, 뭐 이 경제에 대한 그런 고충을 당해본 일이 읍거든. 그러니 저기 살림이 자꾸 줄어들 것 같으면. 온 집안 식구들이 공연히 불화가 생기구 뭐, 인제 돈두 아쉬울 때가 있고, 뭐 별별 우환 질구가 많이 생기구 이제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길 끼란(거란) 말이요. 그러나 팔대 만석꾼이니까 만석군이 해 마다 원 몇 백 석씩 줄어두 자기는 평생은 먹구 살겠단 말이여. 그 노인이 그렇지 않아. 노인이 얼마 안 있다 죽을 테니까 살겠지마는 그 자식들이 고생할 생각하니까 그기 걱정이란 말이야. 그래, 그 이튿날 아침에 잠도 못잤지. 고날 밤새도록 담배나 피우구 잠 못 자고 있다가 아침에 인제 그래 팔대 만석꾼이니까 그 작은 집도 한 오천씩 하는 작은 집도 있고, 삼천씩하는 작은 집도 있구. 그 뭐, 칠천 석 하는 작은 집도 있구.
작은 집들이래도 오천 석 삼천 석 천석 부자가 십여 명이여. 그래 그 인제 동상(동생)이구 조카, 말짱(아침) 불러 왔지. 아칙(아침)에 에, 불러와서 내가 갑작스레[제보자가 틀린 듯] 처음에 걔가(그 아이가) 갈 때에 이왕 걔는 간다니까,
“너 가면 어디로 갈려느냐?”
하니까,
“저 서울 동막 최팔용이 집으로 가요.”
이래고 없어진단 말이여. 그래 그걸 들었거든. 그 인제 줸이,
“서울 최팔용이가 얼매나 잘 살아서 우리 인복이 그리로 갔는가. 그집 구경이나 가야겠다.”
그래 인제 아침 동상이니, 조카니, 모두 돈냥 삼천 석 사천 석 오천 석짜지 뭐, 부자들 불러다가서,
“내가 서울에 급한 볼일이 있어 갈 테니까 너 돈 있는 대로 꾸어다와. 있는 대로 뀌다와.”
하니까 뭐 동상, 조카, 큰댁, 형님, 참 아저씨라던가 할아버지라던가, 형님이라던가, 그런 촌수가 된 사람이 많이 있을 끼 아니야. 아, 근 큰댁 할아버지구, 형님이구, 아저씨구, 돈 뀌달라니 있는대로 참, 돈 뀌완 기(꾸어온 것이) 그맘때 돈 뀌완 기 그맘때 팔만 냥이야. 응, 그래 팔만 냥인데 그걸 다 가지고 갈 수가 없고 하니 여기서 어음 음쪽이지 지금 음쪽 어음을 해서 서울로 부치고선 서울 올라갔거든. 여비만 가지구 올라가서 서울 동막 최팔용이 집으로 가서 찾는데 최팔용이가 갔는 데는 간 집은 서울 동막에서 상당히 잘 사는 집에 갔을 기란 말이야. 그래 그 부호층으로 다가설란에 보름을 댕기미 찾아도 최팔용이가 읍서. 그 다음에,
“중간층이 잘 될려고 또 최팔용이가 갔는가?”
그 저 우리 인복이 갔는가. 그래 중간층으로 찾아 돌아댕기니 또 중간층에 최팔용이란 사람 또 없어.
“그럼 맨 어려운 사람이 잘 될려고 우리 인복이 갔는가?”
어려운 사람 층으로 또 한 보름 찾으니 어려운 층에도 최팔용이가 없어. 아, 그레니까 그럭저럭 하다가 뭐, 두 달 가까이 찾았지. 그렇지, 아니 아 도저히 못 찾겠단 말이여. 그래 하루는 봄날 따뜻한데 저 동막 산등에 올라설라네 누워설란 그 동막 글로(거기로) 오강이 인제 내려가는데, 옛날엔 그 서울서 오강으로 뗏목을 놓고 가지구선 뗏목을 말짱 끌여다가 서울 사람들은 그걸 화목을 했거든. 지금은 탄이 있지마는 그래 그 오강에 뗏목 낼쿠는(내리는) 인부가 수백 명이 있어 거기서 뗏목을 건지러 볶아 친단말이야.
“저 속에 혹 인부 노동자가 최팔용이란 사람이 없는가.”
찾아 갔지. 찾아 가서 가기니까 막 즘심(점심)이 인부들이 즘심을 모고섰잖에. 이제 무덕무데기 모여 앉아서 지찌리(자기들끼리)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폭 자는 사람도 있고 이제 즘심 때니까 그래. 여(거기에) 와서,
“혹 이 중에 최팔용이란 사람이 있습니까?”
그레니까,
“여기는 없어요.”
또 한 무데기 가서,
“여기 혹 최팔용이란 사람이 없읍니까?”
“여기는 없어요.”
또 저 짝 모여 앉은데 가서,
“최팔용이란 사람이 없읍니까?”
그래 한 사람이,
“최팔용이가 아요, 어른이요?”
거러거든. 그러니 최팔용이 아나. 모르니,
“글쎄요, 그 동안 장갤 들었는지 헤쳐전 지(헤어진지가) 오래 돼서 장개 들었는지 모르겠다.”
구. 그래 어름푸시 대답할 수밖에.
“아 같으면 지게 밑에 자는 더벅대가리 자가 최팔용인데요.”
아, 그랜단 말이야.
“그래.”
가니까 거 가보니까 아, 얼굴은 괜찮은데 아주 더벙대가리에 그렇게 뭐, 잘 입지 못하구 그런 아 말이여. 갈(그 아이를) 깨웠지.
“야!”
깨우니까 벌떡 일어나. 일어나니까 아 난데 없는 노인이 와서 절, 저는 아지도 못하지 뭐, 영감도 아지도 못하려니와.
“니가 최팔용이야?”
“예, 왜 그래요?”
“어 참, 내가 너 찾으려고 숱한 고생을 했다.”
그래 인제,
“니가 내가 느 이모부다.”
이모분데 촌술 대서 인제 뭐, 인척이 되는 걸루 이래 대줬단 말이야. 이모분데,
“내가 널 찾거든 찾으러 숱한 고생을 했는데, 너, 너 아버지 어머니 어떻게 됐니?”
“다 돌아가셨어요.”
“그럼 가족이 없니?”
“다 없어요.”
“너 어디 와 있니?”
“저 동막 거기 우리 외삼촌 댁에 나 혼자 와 있어요.”
그래 거기서 대개 가(그 아이의) 집 사정을 알아 가지고 갔단 말이야. 알아 가지구,
“너 그러지 말구 나와 가자. 느 외삼춘 댁으로 가자.”
“아, 품값 오늘 한낮에 판 품값을 어떻게 하구요?”
“품값 얼마니?”
“나 뭐, 저 하루 한 냥 받아요.”
“그 한 냥 내 다 주마. 줄 테니 가자.”
한 냥 준다니까, 한나절 일하고 품값 준다니까 따라갔단 말이야. 떡 따라 갔다. 외삼춘도 역시 집이 어렵거던, 집이 어려워설란에 맨날 품팔이 댕겨. 그래 인제 외삼촌 집에 외삼춘이 지냑에 인제 들어오니 외삼춘하고 통성명을 하고 낮에 야한테(이 아이한테) 야, 이늠아한테 인제 가정 얘기, 가정 환경 얘길 대강 들언 기(들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인제,
“야(이 아이의) 아버지 나와는 동서간인데.”
그런 얘길 죽 하곤, 이젠 그 동안 야한테 들으니까 즈 아버지도 죽고, 즈 엄마도 죽고, 다 죽고 뭐 이래 야 혼자 외삼촌 댁에 와 있다니,
“야, 그 참 보호하기를 얼마나 고상이 많냐구. 고생을 많이 했다구. 가재 살림도 넉넉지 않는데 얼마나 고생이 되느냐?”
구. 이래 인사를 하구는,
“내가 여기서 한 오래 묵고 갈 테니 쌀 좀 사둬라.”
고. 돈 서른 냥을 꺼내 줬어. 아, 돈 서른 냥을 꺼내 주니 그맘때 서른 냥 꺼내 주니 쌀은 뭐 여덟 가마니, 열 가마니 가까워. 아 어려운 살림에 쌀이 제기 열 가마 있으면 뭐, 부자 부럽지 않거든. 그 외삼춘 생각에. 그러고 또
“쌀만 있으면 뭐 하겠느냐, 반찬거리도 사오라.”
고, 그래 돈을 스무 냥을 또 꺼내줘. 아, 그러니 뭐 그맘때 돈 스무 냥이면 별별 반찬 다 살 수 있지. 그래 떡 인제 사다거 반찬거리 사오고 그래니 아뭏든,
“외삼춘은 인부 가지 말라고 나하구 서울 구경이나 댕기자.” 구.
“하, 인부 안가면 어떻게 됩니까?”
“아, 걱정말라고 내 인부 가는 품값은 매일 품값 그 정도는 내 대줄테니 걱정말라.”
고. 아 그러니 서울 구경가자. 쌀을 뭐, 열 가마 이상 들여놔. 아, 반찬값하라고 스므 냥 줘. 뭐 금방 부자나 부럽지 않지 뭐. 그래 매일 그 참 만석군 주인하고 인제 그걸 한다. 인제 서울 구경을 댕긴다, 그래 최팔용 가도 (그 아이도),
“노동 품팔이 가지 말라고. 집이나 지키라.”
그래구, 그래 인제 얼마큰 하다가,
“이 동막서 제일 좋은 집을 사자면 얼매 가량 되느냐?”
하니까,
“제일 좋은 집을 아무래도 천 냥 가량 줘야 된다.”
고 그래.
“천 냥을 줄 테니 제일 좋은 집 하나 흥정해라.”
고. 그래 서울 사람들은 남보다 시세위에 더 받으면 팔구, 또 딴 집 사고 그래니까 그래 남보다 시셀 더 준다고 그래니까, 그래 동막 천지에 제일 좋은 집을 하나 샀단 말이야. 사니까 소문이 동막 천지에,
“아, 동막의 최팔용이 고 시골서 아저씨가 올라 와서 아, 동막 천지에 제일 좋은 집을 샀다.”
고 소문이 자자할 끼 아니야. 그래 남들이 다 부러워하지.
“그래 저, 야 집은 이마한 그 샀으니 그렇지마는 그 논을, 논을 좀 어떻게 이천 석 받게, 짓게, 야 앞으로 사 줄테니 한 이천 석 받게, 어디 흥정 좀 대라.”
고. 그래, 서울 대개 부자라는 기 저 전라도 뭐, 경상도 저기 모두 뭐, 몇 백 석 지기지 소작 받고 얼마 소작 받고 전라도 이백 석 추수하는 거 충청도 삼백 석 추수하는 거 뭐, 모두 서울 사람들 부자들 말짱 그렇거든. 그래 뭐 한 사흘 돌아댕기더니 이천 석 지기 샀단 말이야. 그래 남보다 후하게 주고 사지 이왕 그냥 나가는 돈이니까 막 사는 기라. 자, 그래니 집 있구 논두 이천 석 사구 그랬으니까,
“야. 장갤드레야 되겠다구. 장갤드레 주고 가야겠으니 어디 동막 천지에 좋은 처녀 있거든 좀 물어 보자.”
구. 그러니, 그 외삼촌 얘기가,
“이 뒷집에 김진사집에 딸이 잘 자라는데, 김진사집이 우리 같은데 딸을 주겠오?”
“아, 그 밑저야 본전이니까 그 가서 물어나 보라.”
구, 그래 가서 물어봤단 말이야. 그 짐진사 집두 그 최팔용 시골 아저씨가 와서 사줘, 논 사줘, 그 소문 다 들었단 이야아. 혼인을 물으니 아, 동막천지에 제일 좋은 집이지 논도 한 이천 석 지기 있지, 떠꺽 승낙이 나네. 아 그래 거기 장개 들어가구서 상객은 이제 시골 아저씨가 간다. 그래 강객 후행을 이제 시골 아저씨가 가서 장개 잘 들어가지고 와서 살긴 사는데. 그래니 인제 집 사줘, 논 사줘, 장개 들여줘, 이제 살게 만들어 주었단 말이야.
“나 이제 집으로 간다.”
그래니 최팔용이가 따라 나서네.
“저 내가 좀 같이 아저씨 댁에 같이 구경을 해야겠읍니다.”
“아 가만 있어라. 내 내려 갔다가 한 보름 후에 올 테니, 그맘때 같이 가자. 난 가다가 중간에 몇 군데 들려 갈 떼가 있어. 바루 집에 갈 때 너와 같이 가지.”
가다 중간에 가다 들려 간다니까 야가 버쩍 못 따라 나섰단 말이야.
“그럼 아저씨 주소가 어디레요?”
“주소 알 필요 없다. 요담에 와서 너와 같이 가면 되지 뭐, 주소 뭐 알 필요 뭐 있나?”
주소를 당최 안 알고 주는 기라. 그래군 내려왔지. 내려 왔는데 그럭저럭 정월 보름께 떠났는데 한 삼월 그믐께쯤 집에 갔단 말이야. 그래니까 인제 논 사주고, 밭 사주고, 거서 인제 최팔용이 집을 찾거러(찾아 다니느라고) 두 달 동안 걸리고 이래서 그래 뭐, 삼월 그믐께 사월 초쯤 집에 떡 들어가니, 근데 간다 온다 소리 없이 그 줸이 그 말하자면 큰댁 아저씨니, 할아버지니, 형님이니, 이런 모든 일가 친척이 집안이 많이 있는데, 오래간만에 그 넉 달이나 돼 집에 갔으면 온 집안 식구들이 반겨이 알구 참 모두 참,
“어디 가셨다 이제 오느냐?”
고 참 반가이 맞겠는데, 집에 들어가 봐야 집이 스산한 게 식구들이 그렇게 반거이 대하지 않는단 말이여.
“아, 그 동안 뭔 사고가 났구나.”
하마 짐작에 돈이 나갈려면 별짓 다 많지. 그래 오래간만에 큰댁 할아버지가 왔다고 하니 고 이웃에 뭐, 손자들, 조카들, 동상들, 죽 모두 모여 인사를 하구는 인사를 한 뒤 별로,
“왜 이렇게 어디 갔다 이제 오십니까? 왜 소식두 없으셨읍니까?”
반겁게 인사하는 사람이 하나두 없아.
“반드시 이면에 그 동안 뭔 사고가 났다.”
그래 인제 그 다음, 그 다음 그 줸 영감 다음 동상이,
“난 오랫만이고 하니 형님하고 같이 온 지냑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
고. 또 이 줸도 그 동상이나 누구 하나 갖다 재워야 그, 그 동안 집안 사정을 좀 알겠는데 자기가,
“그러지 않아 나도 인제 자넬 좀 자고 가라고 그럴까 했더니 잘했네.”
그래 인제 자는거라. 두 형제가 앉아서 얘기가 동상이 먼저,
“아, 형님 큰일났읍니다. 이거.”
“왜.”
장질이지. 줸 아들이니 장질이지.
“장질 아이가 천생 그런 일이 없더니 요새 뭐, 주색잡기에 대단합니다. 맨날 주막에 가설란 술 먹구, 그 뭐 노름질하고, 그 돈을 막 물쓰듯 막 쓰고 한 번에 그 노름질하더 싸움이 나서 한 사람 죽였읍니다. 살인을 쳤읍니다. 살인 쳐 가지구 논 어디 있는 논 오백 석 지기를 팔았읍니다. 팔아서 그 틀어 막았읍니다. 그래니 이 집안이 난감이올시다. 그래구 지금도 뭐, 그제 밥만 먹으면 집에 한 번 나가면 닷새 엿새씩 객지에 묵어설란에 주색잡기에 방탕거리고 큰일났읍니다.”
가만 생각하니 집안 살림 나갈려니 그런 이제 증조가 닿는 거라. 그래니 줸은,
“허허, 이기 살림이 나갈라고 걔가 그렇다고. 그러닌기 아니라 살림이 나갈려고 이런 조화가 생기는 거란 말이야.”
그런데 한 해 지내 이태 지내 당체 뭐, 자주 우환질구와 주색잡기에 뭐, 반해 댕기고 그저 일년에도 몇 백 석, 몇 백 석 지기도 팔게 하니 매련이 없단 말이야. 그런데 한 해 지내, 이태 지내, 삼년 지내, 최팔용이는 말이여 서울 동막 최팔용이는 보름에, 보름 후이면 시골서 오시겠다는 아저씨가 생전 오셔야지. 일년이 되니 오나, 이태가 되니 오나, 삼연이 되니 오나, 그래 최팔용이는 서울서 논 그저 논을 이천 석 지기 샀으니까 천석 지기 추수는 최팔용이가 수입하고 천 석 지기는 시골 아저씨 몫으로선 아저씨 몫으로는 따로 소작 받아서 늘구는 거야. 자꾸 자꾸 늘구는데 이 시골 아저씨는 그럭저럭하다가 한 열두 해나 열세 해 돼서 죽었네. 그만 죽을 때에 가족들에 유언이 무언가 하니,
“우리 집안이 참, 이렇게 우환걸구가 심하고 인폐 작폐가 심하게 나니 살다가 셋 때를 거푸 굽거든(굶거든) 서울 동막 최팔용이란 사람을 찾아 가거라. 그런면 살 도리가 있으리라.”
그래 유서 하나 써 주고 죽었다 이 말이야. 자 그레니 줸 영감이 죽고, 그래니 사는 기 당초 우환질구와 맏아들은 주색잡기와 돈 나가는 기 형편이 있나 그래. 그냥 살림이 줄었으면 괜찮겠는데, 그 맏아들이 주색잡기에 반해서 그러니께 말이여. 처음에 먹을 끼 없으니 말이여, 작은 집에 이 집에 가서 쌀 한 가마이 꿔다 저 집에 가 한 가마이 꿔다 뭐 작은 집들이 다 오천 석 삼 천석 뭐, 그렇게 다하니까 그만큼 꿔 줄 수 있잖아. 큰집에 꿔주나, 거저 주는 기지. 꿔 주다 꿔 주다 못하니 그것도 그냥 살림이 나갈쎄 그 맏아들이 주색잡기 뭐, 이런 걸 하고 하니께 미워졌단 말이야.
그늠어 살림이 그냥 나가면 모르겠는데, 너무 주색잡기에 방탕해서 살림이 주니까 미울끼 아닌가. 삼춘이구 뭐, 오춘이구 다 뭐 밉지. 뭐, 하는 짓살머리가(짖이) 그 아주 살림을 다 떨어먹으니,
“에이, 내버려 둬라. 굶어 죽든지 내버려 둬라. 그 따위짓 해 가지고 살림을 탕신가산 만든 거 누가 대주냐고. 가난에 구젠 나라도 못한다구, 내버려두라구. 주질 마라.”
고. 아, 그래니 작은 집들이 쌀도 안 꿔주지. 먹을 끼 떨어지니 되나. 나흘 굶었단 말이야. 굶어 할 수 없으니,
“에이구 이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사흘 거푸 굶거든 서울 동막 최팔
용 집으로 찾아가라. 거 좀 가보자.”
그런데 그 동안 최팔용이는 자꾸 천 석 그걸 인제 시골 아저씨 몫으로 소작도 받은 걸 그걸 인제 자꾸 늘구구. 늘구구 한기 다시 만석이 됐어. 시골 아저씨 몫이 만석이 됐으나 시골 아저씨가 와야 주지. 나 이런지기. 그래 저는 오히려 줄어 받아쓰고 하니께 으례 시골 아저씨 몫보다 못하단 말이야. 그래 시골 아저씨 몫은 만 석을 봤단 말이야. 그런데 하루는 이 인제 이 떼들이 전라도를 떠나 서울로 동막으로 완 기라. 서울 천지에 가서 동막의 최팔용을 찾으니 아, 최팔용이가 그 동안 뭐인가 경북궁 수리할 때 돈을 많이 뭐, 회사해 가지구설란에 참봉인가 뭔가 감투를 하나 얻어 썼네. 최참봉일쎄. 그 인제 최참봉 거기선,
“최참봉님, 최참봉님.”
하고 대우가 무섭지. 만석꾼이니까. 그래 그 시골 꺼주한 사람들이 인제 올라와서,
“여가 최팔용이 집이냐?”
물으니까 남녀 노비를 두고 지내는데, 그 노속이 나와설란에,
“어디서 오셨나?”
“우린 시골서 왔다.”
고. 그런데 일구월심 최팔용인 또 그 동안 어떻게 됐냐 하니 살림도 많았지만 그 뒤란에 다가선 칠성단 놓구선 그저 먹구는 시골 아저씨 좀 만나게 해달라는 기 소원이여. 그기 하느님한테 기도 드리는 거여. 이 그렇게 하는 도중에 시골서 웬 사람이 왔다고 하니 혹 또 시골 아저씨 소식을 가져왔나 하구,
“그럼 들어오라.”
그래 사랑방에 떡 들어왔는데, 그래 차차 물어보고 하니께, 아 시골 아저씨는 그 동안 돌아가시구 집이 참, 지폐가 되설라네,
“사람이 거처 굶거든 서울 동막의 최팔용일 찾아가라. 그래서 사흘 참, 굶게 되어서 그래 여기까지 찾아왔다.”
하니,
“아, 시골 형님 만났다.”
구. 최팔용이가 아주 반가워서 울민 말이여,
“아, 그 동안 내가 시골 아저씨도 못 만나고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니 이게 웬 소리냐고. 그래 난 시골 아저씨 한 번도 못 만나고 내가 살어야 옳단 말이냐.”
구 참, 온통 통곡을 하지. 그러니 시골 아저씨 때문에 저도 만석꾼 부자가 됐으니 어째 통곡을 앙이 하겠어. 아, 그래서 아, 형님이지.
“아, 형님 걱정 마시우. 형님 재산 여 만석꾼 되여 해놨읍니다. 아무 걱정 마시우.”
아, 그래서 만석꾼 찾아 가지구 되 만석꾼이 되서 잘 살았다는 얘기가 있어. 그래니 그 부자 웬 줸이 지감이 있는 사람이야. 이왕 나갈려는 살림 아무리 붙잡을라 해 봐도 소용이 없거든. 딴 방법으로 써 가지고설란에 그렇게 해서 다시 만석꾼 자식들한테 넘겨준단 말이여. 보통 사람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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