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상황
1979. 7. 31. 오전 8시 30분 전복 남원군 남원읍 동충리 시외버스 터미날 옆 은희식당에서 숙소를 정한 후 남원군 일대 조사차 출발을 하였다 대강면은 최내옥, 금지면은 조사보조원(숭전대 국문과 학생)인 김호선과 강현모, 주생면은 이태효 김준각이 담당하였다. 이 고리봉은 금지면 방촌리(金地面 芳村里)와 접해 있는데 708m이다. 조사자가 전에 조사한 것은 이러하다. 2000년전 하후씨가 9년 홍수를 다스리고 전선적(全鮮的 全國的)으로 큰 배를 만들어 타고 다니면서 구제창생(救濟蒼生)하실 적에 고리를 매고 배를 띄웠기에 고리봉(環峰)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고리봉전설은 대화를 통하여 전설을 찾아내는 것인데 이러한 방법을 쓸 때 조사자는 설화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조사자 최내옥은 대강면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대강이 집인학생 임인규(林仁圭 이리공고 3년)군을 만나서, 대강면에 조사를 가는데 무슨 전설거리가 없느냐고 물으니 고리봉(環峰)이라는 곳이 있다고 했다. 이 고리봉은 대개 홍수(洪水) 설화의 흔적으로 나타난 지명이므로 물었다.
채록내용
제목: 고리봉 전설 자료분류: 설화 테이프번호: T. 대강 1 앞 분류코드: [대강면 설화 1] 조사지역: 전라북도/남원군/대강면 조사장소: 사석리 조사일: 1979. 7. 31 조사자: 최내옥 제보자: 임인규(남, 19) 구연상황: 1979. 7. 31. 오전 8시 30분 전복 남원군 남원읍 동충리 시외버스 터미날 옆 은희식당에서 숙소를 정한 후 남원군 일대 조사차 출발을 하였다 대강면은 최내옥, 금지면은 조사보조원(숭전대 국문과 학생)인 김호선과 강현모, 주생면은 이태효 김준각이 담당하였다. 이 고리봉은 금지면 방촌리(金地面 芳村里)와 접해 있는데 708m이다. 조사자가 전에 조사한 것은 이러하다. 2000년전 하후씨가 9년 홍수를 다스리고 전선적(全鮮的 全國的)으로 큰 배를 만들어 타고 다니면서 구제창생(救濟蒼生)하실 적에 고리를 매고 배를 띄웠기에 고리봉(環峰)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고리봉전설은 대화를 통하여 전설을 찾아내는 것인데 이러한 방법을 쓸 때 조사자는 설화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조사자 최내옥은 대강면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대강이 집인학생 임인규(林仁圭 이리공고 3년)군을 만나서, 대강면에 조사를 가는데 무슨 전설거리가 없느냐고 물으니 고리봉(環峰)이라는 곳이 있다고 했다. 이 고리봉은 대개 홍수(洪水) 설화의 흔적으로 나타난 지명이므로 물었다. 조사자(崔來沃): 고리봉에 대한 이야기, 내력 좀 이야기 해줘요. 화자(林仁圭): 모른당 개요, 제가. 조사자: 왜 몰라라우? 고리봉이 홍수 때 물에 잠겨서 배를 매서 고리봉이라고 하던데 그런게 아닌가? 화자: 거기 지금은 고리도 없고요. 광동에 옛날 고리를 맺던 고리가 있었는데요. 흔적이 있어요. 지금 거기 바위가 있는데, 그것밖에 없어요. 조사자: 고리봉밑에 광동인가요? [지도를 보며] 화자: 고리봉하고 광동리하고 거기 두간데(두군데)에서 광동 고리에다가 배를 맸거든요. 광동에다가 옛날 배를 맸어요. 그 고리가 있어요. 조사자: 옛날 그러면 여기가 물이 짐겼다는 것입니까? 화자: 그래갖고 광동에 있는 줄로 배가 왔다갔다 했다는 거지요. 조사자: 광동하고 고리봉 사이를? 화자: 네. 조사자: 그러면 대강면은 그때 물속에 다 잠겼었고? 화자: 네. 한국구비문학대계 5-01 본문 XML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