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제목
삼척 지방 유래
자료분류
설화
조사자
김선풍, 최임규
조사장소
강원도 삼척군 삼척읍
조사일시
1980.11.09
제보자
김일기
조사지역
강원도

구연상황

구연상황 없음

채록내용

강원도/삼척군/삼척읍
[삼척읍 설화 85]
T. 삼척 11 뒤
남양리
삼척 지방 유래
구연상황 없음.
 
 김 이사부가 그게 어떠 됩니까. 김 이사부가 이 쪽으로  온 때가 502년인가 이렇게 됩니다. 신라 502년인데 그 시절이 이제 에 원래가 실직국이라 이러면 저는 삼한 시대에 하나의 부족 국가, 부족 국가로 죽 있었는데, 이것이 이제 신라에게 합방되는 것이 102년인가 이렇게 되지요. 아마 102년때에 신라에 합방되니까, 이 지방에  진한 지역 진한 지역에 하나의 부족 국가로 있다가 신라에 합방되었다고 이렇게 보는데, 그래 쭉 후에 에 고구려의 광개토왕  그리고 또, 다음에  그 왕이 장수왕이요. 장수왕이 460년대죠. 460년대에 남하 정책을 하지 않읍니까. 그 백제가 다  밀려오고 신라도 이제 동해안에는 영해 영덕까지 밀려갑니다. 고구려의 남하 정책으로서 밀려 갔을 때. 
 이 지방은 고구려의 그 만주에 있던 말갈족을 동원해 가지고,  이 남하이 영동 지구를 치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고구려  땅이 되지요. 됐는데 그  후에 이제 신라가 지증왕  때 502년, 505년인가 이러 됩니다. 그 때 당시 지증왕 때에 북진정책인가를 하지요. 북진정책을  하지요. 특히 영동 지구에 그 먼저 탈환을 이렇게 하는데, 그 때 당시에 영동 지구  탈환할 당시에 장수가 이사부입니다. 
 이사부가 에, 이 해군하고, 육군 뭐, 요즈음에는 해군 육군 이러합니다만 그 때에는 수륙군을 거느리고, 이 쪽으로 침입해 옵니다. 그래 이 오십천강이라는 것이 영동 지방에는 이  강이 있어야지요. 뭐, 뭐, 조그마한 내지요. 그러나 이 영동 지구에는 큰 내가 없고, 그래서 오십천 이것이 100 그여리 되는 이런 긴 인제 강이죠. 그리고 이 하구가 상당히 넓고 자연 항구로는 배가 대기 아주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이 쪽으로  수병을 거느리고 인제 침입을 해서 영동 지구의 근거지로 아주 삼았죠. 그래서 인제 에 실직을 탈환해 가지고 이 지역을 실직주라고 처음으로 만드지요. 만드고 그 때 당시 주에 우두머리 군주라 했지요. 그래서 실직주 군주가 이사부 되지요. 
 그리고 인제 강릉까지 또  인제 수복을 하지요. 이 분이. 그래서 강릉, 삼척 이 지역 인제 울진, 이  쪽 지역을 에 하슬라주, 하슬라주 이렇게 만든 것 같아요. 그러 만들어 놓고는 512년이 됩니다. 삼척이 이제  수복을 한지가 505년인가 이렇게 되고, 512년에 에 이 오십천강 여기에서 배를, 해군 기지니까 여기서 배를 타고 울릉 그 때에는 우산국이라고 그랬죠. 우산국을 쳤는데, 처음에는  실패작으로 돌아갑니다. 뭐, 그 우산국이 지금 울릉도가 그게 산세가 높고 어 그 사람들이 아주 그 참 괴팍해서 아주 강해서 그 머 함락시키지 못해요. 그래서 돌아완 뒤에 꾀를 내지요. 꾀를 내서 빈 배에다가 그  나무사자 목 사자를 이렇게 인제 만들어  가지고 거게 인제 짐승의 털을 거다가 씌우지요. 씌어서 빈 배에다 많이 거다가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빈 배를 끌고 갑니다. 끌고 가서 우산국에 가까이 가가 
 지고 호령을 합니다. 너희들 그 어, 신라에  항복하지 않을 것 같으면 이 맹수를 어  사자를 풀어 가지고, 너희들을 전부 사자의 밥을 만들 테니까 너희들이 항복하라, 이렇게  했더니까 우산국 사람들이 항복하더라 하는 이러한 이사부 목사 이야기가 있지죠. 
 그래서 그 지점이 오십천 하구인데, 에, 이 오십천 하구가 그 위에 고려시대 이조 시대에 보면 역시 영동 지구에 군사 기지로 된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러니 이 지점이 영동 지구에 제일 아마 중간 지점이 되겠거니와 이 삼척이라는 것이 여기 삼척에서 강릉꺼지 가자면은 그러한 그 높은 산맥이  있잖아요. 밤재라든가 화비령이라든가 이러한 큰 산맥이 있고, 남쪽으로 가재도 여기 바로  곁에에 큰 그 한재라든가 와향이라든가 그 다음에 갈현재들든가 큰 산맥이 있어 가지고 영동 지구의 군사 기지로서 아주 중심체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저 자연적인 항구로서 여, 오십천 물로해서 시내까지 이까지 배가 들어 올 수 있거든요. 그때, 그  시대에 배라는 것은 조금 목선이고,  그래서 그런 깊이를 요하지 않는 이러한 그 강에 충분히 댈 수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이조 때만 하더라도 여기에 삼척 포진성이 있어 가지고 영동의 그 아홉 개 군의 수병을 여기서 관할을 하고, 거, 울릉도를 역시 여기서 관할을 해서, 어, 하나의 한일합방 때까지 우리 나라의  영동 지구의 하나의 군사기지, 군사기지로 삼았다. 이런 것을 봐 가지고는 신라시대 때에도 이 실직주의 여 오십천 강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군사기지다. 이렇게 보고 있읍니다. 그래 지금도 그 부근에 성이  두 가지가 있어요. 고려 시대  이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오분리가 있는데 삼척읍 오분리 동쪽에 아주 바다하고  접해 가지고 있지요. 그것을 [조사자가 오분리를 한자로 묻자 五粉里라고 설명을 한다.] 
 그래 인재 그 뒷산에 그 성이 있는데  그것을 요정 산성이라고 그러지요. [채집자가 요정을 어떻게 쓰느냐고 묻자.] 요 정자가 상당히 그 글자가 어렵습니다. 어 그 요정 산성이라고 하다가 요즈음에는 오분리 뒷산에 있 
 다 그래 가지고 오분리 고성이라고도 이렇게 하지요. 오분리  고성이라고도 하고 그래 있다가 이조 중종 때 와 가지고는  그 산성을 지금은 그 토성으로 되어  있읍니다. 토성이 흙이 많이 무너지고 이래서 지금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지요. 
 이조 중종때 와 가지고는 바로 그 북쪽 편으로 강 북쪽 편으로 지금의 정라진 입니다. 정라진 그 인제 육향대가 있는데 여기에는 퇴조비가 있는데 [조사자가  퇴조비에 관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것이 육향대 마 그 시절에는 죽간대라고 이랬는데 댓꽃이라 대, 대나무가 있는데, 대꽃  빠져 나온 것을 대꽃이라, 그러는데  그 지점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어 삼척포진성을 쌓았거든요. 성을 그 석성을 쌓았읍니다. 그 석성을 쌓아 가지고 그것이 바로 어 삼척 포진성이라 이래서 영동 지구의 군사 기지 기지로 삼은 곳이지요. 어 그것이 이사부의 바로 여기서 울릉도로 우산국으로 갔다는 기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