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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상황
오전 10시경, 조사착수 전부터 제보를 들은 바 있는 제보자의 댁을 방문, 조사취지를 설명하고 인근의 일공소개소에 자리를 마련했다. 주로 제보자의 친구로 이 마을에 거주하는 할아버지 여섯 분이 청중이 되었다. 제보자의 이야기 솜씨는 이미 정평이 있어서, 이런 기회가 생긴 것을 청중들 모두 반가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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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지역: 대구시/북구/산격 1동 분류코드: [대구시 설화 132] 테이프번호: T. 대구 21 앞 조사장소: 북구 산격 1동 조사일: 1983.10.20. 조사자: 최정여, 천혜숙 제보자: 심종구(남, 69세) 숙종대왕의 강원도 순행기(1) * 오전 10시경, 조사착수 전부터 제보를 들은 바 있는 제보자의 댁을 방문, 조사취지를 설명하고 인근의 일공소개소에 자리를 마련했다. 주로 제보자의 친구로 이 마을에 거주하는 할아버지 여섯 분이 청중이 되었다. 제보자의 이야기 솜씨는 이미 정평이 있어서, 이런 기회가 생긴 것을 청중들 모두 반가와 했다. * 지금으로부터 숙종대왕 시절이 버러(벌써) 어언 한 사백 년 아니었읍니까. 이런디, 숙종대왕이 자기가 그 직위를 맡애 숙종대왕 직위(卽位) 십년만에 백성이 함포고복(含哺鼓腹)하고 격양가를 부리고 시와연풍(時和年豊)하고 국토민안(國泰民安)하고 태평성대가 이 아닌야. 하아도 술. 마이 먹고 난판(亂판)을 지어 ‘쾌지나 히칭나네’를 불러가 야단을 지기기 때밀에 숙종대왕이 ‘이래가 안 되겠구나.’ 옛날에도 무농서가(1)-구메농사, 즉 年事가 고르지 않아서 고장에 따라 풍흉이 다른 농사를 말한다.- 안 있나그자. 못 된 데는 조밥마 묵고 사, 감자마 묵고 사고, 이러이 ‘안 되이 이걸로 가일 년을 금주를 함 시기 보자.’ “일 년을 금주해라.” 꼬, 어명을 내랐다 말이다. 내라놓고 자기 발로, 숙종대와잉 팔도강산으러 자기발로 전부다 댕기미 순, 순무(巡撫)를 다했거덩. 할 때 서울서 저녁을 자시고 축지법이 택지비거덩.(2)-확실치 않으나 축지법에 달통했다는 뜻인 것 같다.- [청중: 사십리 간다.] 아이가? 사십리? 하루 천 리 가는데. 이래가 대구에 딱 오니 대구 오이 똑 달이 반이 올라왔어. “내가 오늘 그래 역사에 남기구로 한 마디만 여게 내 지어야겄다. 이 동네이름을 지어야 되겄다. 이 반야월(半夜月)이라고 마 이름을 짓자. 달도 반이 올라와가 왔어.” 인데, 한참 걸어 가니 금호(琴湖), 영천서 내려 오는 금호강 물이 맑은 청려물이, 샘이 물로 떠 보니 참 물이 맛좋거덩. 청천(淸川)이라 캐. 반야월, 청천 이름을, 숙종대왕이 동명(洞名)을 지아놓고. 이랜데, 하루 저녁에는 이래 떠억 한 다음에는 하문 더 축지법을 해가 내리면은, 자기 볼일 보로 갈 때는 어데든지 가다가 머슴들 자는 초당방이나 물방앗간이나 돌방앗간이나 자야 되거덩. 강원도 골짝에 둘막을 슬쩍슬쩍 올라가다가 하니 야인 밤중에(3)-夜陰 밤中에.- 곡도 하나 없이 상주 서이가 시체를 갖다놓고 구디이를 파고 하관할라고 시작하더란 기라. ‘야아, 여기가 무신 명산이건대 저어 미 쓰노’ 싶어가, 숙종대왕이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할 텐데, 여기 모르는 뭐 있노, 주머니에 패철로 내가 주골랑 그 뒤에 가마 서가주고, 대사줄로 탱가놓고 좌향(坐向)을 보니 태(兌)는 차만데 이 팥구무가 인신사(人身死)에 팍 걸맀다 말이여. ‘하아 이 삼들이, 풍수는 서(西)에 속고, 이 상주 서이는 풍수한테 속았구나. 옳지.’ “여보 여보, 상주임들. 여기 하관 좀 중지하고 내 말 좀 들으소, ” “이 영감재이가 질마 가마 곱기 가지 남우 하참 몰관(沒官)하는데 와 떠든다.” 꼬 밀어 던짔부거덩. 평복을 해가가 과각(科客)행사를 하이 임금인 줄 알끼 뭡니까? 뒤로 비끼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이니, 시체를 떡 옇어놓고 그놈우 몰관이 건주(거의) 되이, “여보 상주임들, 좀 쉬가 하지요.” 그러이, “아 형님, 우리 한 대 푸고 합시다.” 이카디마는 잩(곁)에 떠억 오디이, “영감님, 어디 있소?” “내가 사기는 한양 성내 사요.” “아따, 살긴 좋온 데 사네. 보소, 아무리 나이 많지만도 그 남우 몰관하는데 니말떠라 내말떠라(4)-니말 들어라, 내말 들어라. 곧, 참견하는 것을 이름.- 그 왜 그렇소?” 물으니, “여기 묘를 누가 봐 좄는냐?” 물으니, “하도 우리 삼형제가 못 살아서 어야만 좀 밥 좀 시컨 먹고 남한테 돈안 비고 사나 싶어가, 십 년 동안 남우집 살아 봐야 장례(長利) 갚아주고 나마 만날 이늠우자석 마 빈 모거리 뿌이고 이래서 요 등너메 가마 일류 지사가 하나 있입니다. 그 풍수한테 삼 년을 교제했더니 이 자리안 봐 줍니까? ‘당신 삼 형제는 마 조반석중을 해나가도 큰 부자는 안 되지마는 살 수 있다.’ 이래가 여어 미 안 씹니까.” 커이. 가마 보니 모래 삼오날 닥치마 상주 서이가 다 몰살할 자리라. ‘이거 자기 속에 똥만 수빅이(수북이) 들어가 있는, 일만 하고 있는 사람(5)-배우지 못해 학식이 없는 사람.- 으는, 속에 먹물(6)-문자속, 학식의 비유.- 이 좀 들어가 있이야 되는데, 이거 참 자기 죽을 줄 모르니 원통하다. 에라, 내가 이 직위를 십 년 동안 맡아가주골랑 팔도강산을 내 발로 순찰을 다 해 본 사람이 이 서이 삼 형제를 모 살리 주겠나.’ 주머니에 인(印)을 내가주 갖다가, 녹지(錄紙)를 고마 적어준다 말이라. [제보자: 나많은 노인이 녹지 아죠. 젊은 사람 녹지 그거 모릅니다. 요새 겉으먼은 은행서 저 현금 수표가 녹집니다.] 그 때 천 냥이마 천 석 하고 만 냥이마만 석 할 띤데, 천 냥 녹지를 끊거 줄라고 그 임금님 인을 내가 곽 찍어 가주고는, “모래 삼오날까지 묘 나아뚜저 마고 어떤 풍수를 구하든지간에 이장을 좀 하시오.” 이카고는 고마. 떡 보이 천 냥 녹지거덩. 천 석 안 붙었나 마. [청중: 그미터는 좋다.] 그래 인자 나올라고 떠억 가다 하니까네. “어르신네요, 어르신네요. 울 성함이나 좀 통하고 주소 있으마 좀 갈치주….” “아아, 차차 알겠지.” 거미 고마 떠다 미뿠다. 하무것도 없고(7)-인적이 전혀 없고.- 그 고개를 넘어 오니 과연 외딴 집이 하나 있어. ‘옳다. 이 집이가 이 풍수 집이구나. 에이, 느무집 함 따지 볼 밲이 없다.’ 어든 집이든 가 자야 되거등. 가이, 주인양반을 부릴라꼬 할 때에 내 목에 걸린 옥새가 위태하더란 기야. 임금은 옥새를 차고 가도, 사돈네 집에 가디라도 자기 몸에 징기고는(지니고는) 안 잡니다. 밤중에 나가가줄랑 나무 삣가리 밑에나, 짚동 새나 갈무리해 묻어 나돘다가 날만 새마 징기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간신이 있거등. 대국천자가 우리나라 뺏들라꼬, 옥새 뺏들라꼬 트집을 얼매나 부리고 그 사신을 보냈는 기라. 할 때, ‘에라 여 옥새나 갈무리 해놓고 보자. 마당 복판에 벌새미(井)(8)-다듬어지지 않고 아무렇게나 버려진 우물.- 가 있고 노송나무 가지가 벌어져 숲이 돼가 있는데 이 나뭇가지 새복판에 묻어놓오만 누가 알겠느냐.’ 그래 옥새를 뱃기가줄랑 나뭇가지에 딱 걸어놓고 이박질(9)-확실히 알 수 없다.- 밑엔 바가지가 둥둥 떠 댕기미 벌새미가 있다 말이라. “쥔양반 계십니까?” 이카니, 문을 펄떡 여는데 보이 신을 삼고 있는 신쟁이라. 옛날 육날이미 틀이(미투리)라꼬 있었입니다. 육날이 미틀이 그 늠을 떡 삼다가, “아이구, 야인 밤중에 어던 할아부지가 웬 일이시요?” “내가 살기는 한양 성내 사는데 강원도 산세가 유명하다 해서 산세지 리들 좀 보까 싶어 왔더니 아 그 청부다 이거마 처소를 몬 잡고 댕겨, 불로 보고 찾아 왔이니 하룻밤 유숙을 좀 부탁할 수 없소?” 이카니, “하이구, 할아부지가 이런 묵터방아(10)-오래 묵고 낡은 방에서.- 자겠읍니까?” “괜찮소.” “조끔 기다리 주이소.” 거디이, 건네방아 가디다는 방을 마카 씰어내고 초식이를 피이놓고 그래 한양 성내 있다 거만, 참 옛날에는 서울이 없거덩, 한얭이라 캤거등. “하이, 들오십시오.” 인사를 하고 이러왈 저러왈 인자 이약을 허다가, 숙종대왕님이 하는 말씀이, “사람은 속에 먹물이 좀 들어가 있고 배운 기 있이야 되지, 아무 꿋도 모리고 속에 오장육부에 똥마 드가 있는 사람은 자기 죽을 줄 모리더라 말이라.” 이카인끼네, “할아부지, 그기 무슨 말씀이죠?” 그러이, “아, 등너메 요오 오다가 보이꺼네, 어떤 상주가 거어 밭따물에 묘를 도독미(11)-도독하고 불룩히 솟은 묘.- 를 씨고 있는데 자기 죽을 줄 모르고 거기 미를 씨더란 말이지.” “그 미터 내가 봐 준 거요.” 이카거덩. “그럼 당신이 지사요?” 물으이, “마, 요 골짝에 돌아가는 마 내보다가 나은 자사기 없을 낍니다.” “그래요? 그러마 이 양반아, 쥐약에도 유만부덕이지 모래 삼오날 닥치마 상주 서이가 다 몰살할 자리던데 와 그런 쥐약을 하노?” 물으이껀데, “에이고 할아버지, 한즉 꺼는 알고 한즉 꺼는 잘 모리시네요. 그 삼들이 모래 삼오꺼지 묘 안 나뚤겁니다. 그래도 그 하관 시에 돈 천 냥생길 자리요.” [청중: 웃음] 야, 이거는 참 이인(異人)이거둥. 그 천 냥 녹지 그거 주고 왔다 말이야. “여보 영감님, 그렇기 알면 자기가 이 신 삼고 골짝에 앉아가 이런 고상, 고상하지 말고 자기의 선공의 묘나 조부의 묘를 파갖고 하관하만, 하관시 천 냥 생길 줄 반드시 아만 벼락부자가 될 테인데 와 그런 자리를 남을 봐 좄소?” 물어보니, “하이구 그 미터보다, (12)-‘미터가’로 해야 옳다.- 내 집터보다 몬합니다. [청중: 허허, 그렇지. 맞지.] 그저 백천(百千) 상기 봤자 그저 삼 형제 갈러 봐야 그저 조반석중이나 하고 자식이 나마 천부다 벼슬길이 끊기졌부고 자손들이 나만 전부는 묵동초고만 나니(13)-牧童草介. 곧 보잘 것 없는 일을 하는 사람만 나니.- 그 뭐 만석 하이 뭐 하겠입니까? 내 집터는….” “나으만 와 당신 부자가 안 되고 신을 삼고 이래 신재이 하고 있노?” 물어 보니, “나도 인자 시(時)가, 때가 건즉(거의) 다 됐지 싶운데 내가 이, 이 집터 봐가주 집 지울 때 한 머식을 보이, 우리 마당 복판에 저 노송나무가지에 임금 옥새가 걸릴 자리요.” 야, 이거 참 이인거등. “그래요?” 그래 이러왈 저러왈 이약을 허다가 마 둘이 눕우 잤다. 자고, 아침에 자고 일나갈줄랑 인자 조반 한 술 얻어묵고, ‘이런 이인도 천흑 겉은 골짝에, 강원도 골짝에 묻어 둘 수 없다. 내가 불러가주고 다믄 벼슬아칠 조가주고는 갖다가 내가 한양을 더부(데리고) 와야지’ 겉고, 주소 성명을 명백히 적에서 이빌로 하고 질을 떠났다 거는. 질을 떠나다가 참 밤중마 되만은 그만 또 축지법을 끄어가주는 갖다가 까짓 뭐 멫 백리고 가 내리먼 또 거어 자야 되거등. 그런데, 하문 떡 내리니 천부 불을 끼고 다 자는 데 한 집이 불이 있어. ‘에라이, 불 있는 집에가서 처소를 정할 빾이 없구나.’ 싶어 삽작 문앜에 서서 주인양반 부릴라라는 기라. ‘하 이거 기제(忌祭)를 모시는 모양인데 남 진설(陳設] ) 도중에 불러낼 수는 없고, 이거 뭐 전구에 다 돌아댕겨 봐도 상제예예는 가가 예예라 카지만도 강원두 이 제례(祭禮) 풍속은 어떻게 지내느냥’ 가마아 서가 구경하고 있으니 다아 채리놓고 옷을 좌아 입디마는, “여보, 그 밥이 우예 됐소?” “밥 다 됐임다.” “메를 지아 올리시오.” 그래가주 보니 초헌, 아헌, 삼헌 하는데 보이 한양이나 강원도나 경상도나 건죽 같이 지내거등. 다 지내고 난 뒤에 지방(紙榜)을 뜯어가 손에 거머쥐고 뒤안깐에 가디이 꽹이로 둘러미고 저 마당 복판에 그 거름빼가리 있는 데 가 구디이로 파거등. ‘야아, 그 풍속은 없는데 강원도 풍속은 참이상하다.’ 이카니, “여보 그 우예 됐, 빨리 가오소.” “예. 곧 가아 갑니다.” 걷디이, 부인이 요만한 단지로 하나 이고 오디마는 거기다아 붓고 묻더라 이게라. 그래 드가가 음복 도중에, “주인양반 계시오?” 물으이, 쫓아 나와서 “하이, 아닌 밤중에 어떤 할아부지가 웬일이십니까?” “그래 내가 살기는 한양 사는데 강원도 금강산이 유명하다 캐서 내 그 구경가는 길에 마 처소를 못 정해서 댁에 불로 보고 찾아 왔으니, 하룻 밤 유숙할 수 있소?” 물어 보니, “하이구, 들오시요. 우리 사랑도 너리고(넓고) 방도 뜨십니다.(따뜻합니다).” “고맙소.” 그래 방아 떠억 드가 있이니, 참 음복을 안 치리 줄 수 없거등. 음복을 채리가 떡 오이, 가마아 이래 보이 뭐 갖추갖추 다 잘했는데, “여보 주인양반, 내가 약주를 좋아하는 사람이까네 금방 제사 철상했이마 무인 약준 있지 않겠소. 내 그 술 한 잔 줄 수 없소?” 물으이, “아뿔상. 조끔 일찍 왔더라면은 술을 한 잔 디릴 티인데 없다.” 이기라. “그래, 금방 철상 해놓고 술은 우옜소?” 물어 보니, 귀신이마 술을 삼 잔 올려. 술이 아이마 은감(殞感)을 하지 안 하기 때밀에 술로 한 사발 해 옇을 따니 술을 삼 잔 올리고 철상 끝에, 아까 구디이 파가 묻는 기 술이라. “갖다 묻었붔심더.” 이기라. “이 천치 겉은 양반아, 자기가 먹기 싫으만 이벗 노인을 청해가주골랑, ‘우리 참 부모님의 기제를 모싰이니 음복술 한 잔 하소’ 거미 불러가 대접하는 기 원칙이지 와 그 남존소?”(14)-확실하지 않다.- 물어 보니, “아이고 어르신네도, 살기는 존 데 살구마는 소식이 깡통이로구나. 이 나라 숙종대왕이 일 년을 금주해라꼬 어명을 하달했는데, 백성이 되고 술로 묵겠입니까?” [청중: 아암.] 이거는 만고 충신이다. “아, 늙어지니 주책없이 그저 민(民)은 식이위대(食餌爲大)라꼬 먹는 거만 좋아했더니 과아연 그대는 충신의 마음이요.” “아이구, 겸사의 말씀하구마. 아무 꿋도 준비 없심다. 자 잡수이소.” 그래 이것저것 묵다가 둘이 떠억 자고 ‘이런 충신도 천흑 겉은 골짝에 강원도 골짝에 묻어 둘 수 없다. 내가 더부가서(데러가서) 불러놓고 다믄 벼슬아칠 하나 조야지’ 하고 또 주소 성명을 명백히 적어가줄랑은 인자 질을 떠났는데. 이 때는 어는 때냐. [목소리에 흥을 돋우어서] 오뉴월 삼복 더비에 부채로 설렁설렁 흔드고 질을 인자 그 콩죽 겉은 땀을 흘리고 걸어가다 보니, 그 강원도 농촌에 이 나라 대왕이 일년을 금주해라꼬 어명을 하달했건마는 농촌은 아이 그거 모리거등. 와 풋꽃술 묵는다꼬 안 있나 그자? 논 매고 니는 떡 해 온나 뭐 해라 거미 이가고 막 정자나무 밑에서 ‘쾌지나 치칭나네’ 그고 풍물로 치고 시컨 노는데 가마이 앉어가 있이니, 배도 고푸다 인자. “어르신네 여어 오소. 우리 농주 해논 거 한 잔 잡소.” 거니, 배고푸이 할 수, 자기가 금주하라 캐놓고 안 물 도리 없어. 그래 부흔 막걸릴 인자 한 사발 얻어묵고 이래 떡 노다가 한께 아 고만 껌둥구림(구름)이 둥둥 뜨고 천둥이 우르르, 번개가 펀떡 하더니 마 빗방울이 뚝뚝 널찌디이, “이거 안 되겠다. 우리 초당에 가자아.” 마 싸짊어지고 다 드갔분다. 갓일랑 버저 두루막 속에 옇고 허북허북 걸어가다가 보니 강원도 골짜기는 십리가 되가 두 집, 오리가 되가 다섯 집 참 이래 있는 때민에 어는 뭐 마실을 찾을 수 없, 가다가 보니 누도막 살이 초옥단칸이 하나 있는데 마, 여, 운짐이 답답어가 ‘마, 여어 드가가 비좀 피할 빾인 없구나.’ 쫓아드가가줄랑 처마 밑에 들어서이 이느무 집은 엄내나 높이 지안지 갓일 벗저도 허리를 몬 푸기(피기) 돼가 있어. 마 비가 좌악 따룻는데 마 조저(주저) 앉았다. 앉아가, 하안참 앉어가 깊이 생각해 보니 마 비가 마 연줄로 계속해 따룻는 기라. 한참 따룻는데 숙종대왕이 방아를 가마 드미니, 사람 소래는 나는데 보이 반절은 우는 소리요 반절은 웃, 참 씨장소리요, 슬푸기 뭐 여자들 씨장소리 한다 안 카나? 하고 있는데, 아아들이 보이 바글바글 겉고. 가마안 가가 이래 삐낌이 들 바다 보니 무시(무우) 겉은 허벅지를 훌렁 뱃기 놓고, 황짚푸리는 강원도 황짚우리가 유명하거등, 황지패이 놀라꼬 지칠복 빼가줄랑 삼을 삼으만, “우리도 언제 잘 살어, 아따 남부럽기 함 살아보자꼬.” 하이고 하니, 아, 아들이 있다가, “엄마 감자 삶어 도오, 엄마 밥 좀 도오.” 야단 지기쌓는 데 보이, ‘이래도 천흑겉은 골짝아, 산다꼬 모시리 사는 구나’ 하고 있다가, 할 수 없이 안 알골 도리가 없어. “여보 부인, 죄송합니다만은 남녀유별인데 부인 인사도 없이 남 내채까지 들와 죄송합니다만.” “할아부지 어데 계시요?” 거이, “예, 살기는 한양 사요. 여어 금강산이 하도 유명하다 하기에 유람일차 나왔다가 아 소낙비로 만내가 고마 덮어놓고 들오다 보니…. 부인 미안하게 됐음다.” “하이고, 괜찮습니다.” “비가 조옴처럼 이거 안 그칠 모양인데 방에 좀 들오시까요?” “여보, 부부생활하는 단칸방아 거어 우예 드갈 수가 있겠소?” 그때, 아아들 하고 징게다리 하고 삼삼는 거 정제에(부엌에) 다 갖다 욍기고, 아아들 다 욍기다 놓고 방을 소제해 놓고 자꾸, “할아버지, 방아 들오라.” 겉네. ‘야아, 저 부인이 마음이 천심이구나. 내가 일국 대왕이라꼬 알아도 금옥겉은 자석을 고상시게 가민 저래꺼지 안 할 터인데, 무조건하고 아아들 정제에다 갖다 욍기고, 날로 부를 때는 저 마암이 천심이다. 어야든지 내 저 부부를 함 도와 주지’ 하고 이제, “할 수 없이니 그럼 내가 다리도 저렵제 비가 자꾸 비가 논나겉이 따루니 내 신세를 좀 끼치겠다.” 꼬 방아 드가 앉아 있이니 이늠우 집구식도 날마침 잘 살던동 화로가 없네. 와, 촌에 가마 와 비대이 째진 데, 뀌집을 빼가 박어놨다가, 밤에 그 피와가줄랑 [테이프 뒤집음] , 피아놨다가 언자 또 풀대도 얹어가 모기불 안 피아 주나. “할아부지, 죄송합니다만 우리집에는 하두 잘 살어 그런지 [웃으면서] 화로가 없고 이 비대이 갠데 여어 마 담배 잡수이소.” 은삼노고리 대를 뀌채뿌렁이 박아놓고 담배 푸우고 하는 말이, 자기가, “하이갸, 하아하아 그 옛날부텀 지내간 말이 그 허언이 아니로구나, 우각풍신이 바라진 우기이, 이기 바로 우각풍시이다.” 일국 대왕이 금강산 총석정 골짜기에, 거어 가 앉아 뀌채뿌리이 담배 풀리가 만무하거덩. 하 이거 비가 어지간마 그치마 큰 동네로 갈라꼬 보이, 아 지랄하고, 비가 자꾸 온다 마. 배로 오네. 어, 해가 일모가 다 됐다. 한참 있이이 비를 주울 맞고 머리에 수건을 디이고 남글 한 짐 해가 짊어지 들오는데, ‘옳따, 저 분이 주인인가 부다.’ 떡 갖다 받히놓고 오디이, “여보, 어떤 낯선 신이 하나 있네.” “이 집 짓고 십 년 만에 개미 한 마리도 안 오더니 재 집도 집이라꼬 한양 성내 있는 할아버지가 처막 밑에 서가 있는 것을 보니 하도 안타까버서 애들하고 마카 부엌에다 왱기고 내가 방아 모싰심다.” 거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참, 잘 했소. 당신이 그리야 복을 받고 사는 거요. 임장은 덕이요 목장은 편인데 근데 나도 그 인사해야지. 거어 옷 한 가지 가오시요.” 거이, 방아 돌와 보이 농도 하나 없고 귀짝이 하나 있고 조오 구직(구석)에는 와 촌에 가마 농사 머여 져어가 뭐 성주단지라꼬 요만한 거, 왼 새끼 꽈가 찐쌀 해가 얹이논 거 안 있나. 고고마 간득하기 있고. 오디마는 삼베 주적새미 참 빨아싸인게로 딴 것도 뻗나비 겉은 거 이늠을 떡 가져와가 수군을 머릴 뻑뻑 딲으미 들와서, “할아버지, 인사 받으시요. 명생이 주인이올시다.” 거이, “하이구, 그래요?” 그래 인사하고 난 뒤에, 인사를 해놓고 이 사람이 고마 대걱정를 하고 있는 기, 고민을 하고 있고 꼬치문 상을 하고 앉았더란 말이야. “와 저카노?” 물어 보이 왜 그러냐, 저녁거리가 없다 이게라. 밖에 수에 나갔분 뒤에 주인을 인사해 놨이니, 마음을 놓고 방안 시간(세간)을 쑥 돌라 보니 쪼맨은 무신 옥귀 겉은 요 귀짝 하나 뿌이고 구직에는 성주단지 고고 하나 뿌이고 서적이 꽉 찼더라 이거거등. ‘하하아 이 분이 학자로구나.’ “여보 한양 성내 있는 할아버지가 보리죽은 몬 자실 끼고, 그 밥 좀 할꺼 없소?” 물어 보니, “보쌀 갈어가 죽꺼리는 근근이 모래장까지 견디겠는데 밥할 꺼는 전여이 없다.” 이칸다. 숙종대왕이 방아서 들으이 등더리에 콩이 들어부와. 내바다 보이 아까 보다 비가 배로 더 오네 또. 인자 날은 일모가 다 돼 어덥다. 가마아 생각하디마는 ‘이 큰일났구나!’ 이카디이, “여보, 맥제(공연히) 우리가 미신을 갈리가줄랑은 뭐 시준니, 성주니 뭐 이런거싼데 다 헛일이죠?” “글쎄올시다.” “저, 사람이 죽으면 혼비백산이라, 혼은 흩어지고 몸은 썪어지만 그마인데 방아 성주단지에 찐쌀 저거 버가마 밥 한 그륵 찌아 줍시다.” 그런게, “하이구, 그거 참 잘 생각했소. 그랍시더.” 부인이 돌오디마는 그 성주단지를 내가줄랑은 처마(치마)밑에 옇어 나가거등. 이늠을 씪어가 밥을 안치놓고 반찬 장만다꼬 우비가 있나, 씨앙쥐매로 비라 졸졸 거리미 맞고 울너메 담너메 댕기망 호박 쑥곡(쑥갓) 그늠 따가 밥에 쪄가 그놈 무치고 깨잎푸리, 콩닢푸리, 꼬치는 인자 촌이이끼네 벌겋다, 그놈 따다가 딘장 풀풀 찌지고 살렴은 없어도 그래도 농촌 사다보니 꼬치장아 거어 더덕지는 박아났던 모양이라. 이늠을 빼가 찌일찔 째가 줄랑은 갖다가, 나붓이 밥을 두 그륵 담아 덜러주는 거 보이, 낮에 술을 한잔 묵어났제 근근 그저 밤새울 정도로 안 묵어노니, “할아버지 소찬이라 이런지 밤 새우겠입니꺼?” 거이, “여어 들와가 내 농주 한 잔 얻어 묵었는데 다시 밥은 더 몬 묵겠소.” 밥생이 나가이 이년들 아아들이 밥을 언제 보고 안 봤는지, “아이고 엄마야, 밥 봐라.” 거미, 서러 무울라꼬 마 쌈이 붙어가 대가리가 두 늠이 터지고 마 절단이 났어. 이래가 이날 저녁에 숙종대왕 하고 둘이 이러날 저러날 이약을 허다가 둘이 한숨을 살쿰 눕어 자니, 원촌에 계명성이 들레 문살이 훤하기에 벌떡 일나가 문 열어 보니, 삼 배로 더 온다. 어지(어제)보담도. 사방 물소리마 차앙 하이 이거 큰일났거등. 엊저녁에는 성주단지에 찐쌀 버어가 밥해 좄지만도 온 아침에는 인자 우야노. [청중: 웃음] 이래가 밖에 쫓아나가디만은 젤로 큰 늠한테, 열 여섯살 문 늠을 붙드가, “아무것이야, 아무것이야.” 거이, “아버지, 왜요?” “여어 좀 나오너라 보자. 저 건네 박부자집에 가가아 니 저저 쌀 두 되만 뀌이 돌라 캐라.” “거어 가 봐양 쌀 안 채 줄 껍니다. 먼저 보쌀 서 되 챈 것도 버러 열흘이 넘었지요. 돈 석 냥 갚어 좄는교?” 그러이, “마, 그 때는 나무 했는 기 없어 글타 하고, 시바아 나무 했는 기 넉 짐이나 있고 인 날만 되마 준다꼬 저 서, 한양서 손님이 할아부지 왔다이카만 쌀 두 되 안 채 주겠나. 가 봐라.” 거이, “가 보지요.” 겉디이, 우장때기 덮어씨고 충충거리고 건너간 뒤에 부인은, “나도 여태까지 보리죽마 먹고 사다가, 한양성내 할아버지 덕택으로 인자 이밥(15)-입쌀로 지은 밥, 흰 밥.- 한 그륵 얻어 무우 보자.” 하고 솥 씪어놓고 떠억 기다리고 있이니, 한참 있다가 보이 삽작걸에 곡소리가 진동을 하고 울고 들오네. “옴마도 아배에.” 거고, “쌀을 안 빌리 주 고마 왔붔다.” 거이 고마 정제에 오디 적 어무이 문앜에 엎어져 마 대성통곡으로 운다. 우니, 모녀간에 우는 행동이, 숙종대왕이 저어 팔도강안 다 댕겨도 강원도 총석정 골짝에 가 경주 김씨 집에 가가주는 갖다아 눈물 흘린 역사가 있다거는 사개매가(16)-‘사감(史鑑)에’ 인지 분명치 않다.- 있는 겁니다. 이래가 가마아 들으니, [울음섞인 흉내를 내어] “아이고, 없는 것도 원수로다. 우리는 언제 하문 잘 살어서 오는 손님 밥이나 한 그륵 대접하까.” 이마시 우고, 마 모자간에 엎드리가 실컨 우니 남자는 우는 형용을 가마아 보디마는 두 눈을 껌적 겉디이 껀디기 눈물 껌지고, 확 삐리는(뿌리는)바람에 삐가리(병아리)가 맞어가 마 한 마리 눈물에 맞어가 안 죽었붔나. [청중: 웃음] 이 이건 거짓말이다. 이래가 숙종대왕이 방아서 눈물로 머금어 흘딲었단 이얘긴디. 그래, “마라 겉더냐?” 물어 보니, “‘예, 이놈 너거 집에는 뭐어든지 채주만 갚어 줄줄 모리던구나. 쌀 없다.’ 이캅디다.” 거러이, “크 늠, 모옵쓸 늠, 천석 살림을 누 덕택에다가 앉았고 쌀 두 되를 괄세하다니. 나도 이 늠아 머잖앴다. 장래로 두고 보자.” 이카거든. 숙종대왕이 방아서 가마아 들어 보이 말이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말 가분데 뼈가 있는 말이거등. 그때 뭐 흥분이 바짝 돌아져가주고, “여보 주인, 방아 좀 들오시요. 당신 집이 여, 간구한 것은 내가 먼저 아는데 한양 첨지 왔다고 너무 겸사의 짓을 하마 내가 민구시럽고 하니, 당신 말이 그 공이치구나. 저 건네 박부자캉 당신캉 겨레가 우예되면(17)-結緣이 어떻게 되길래.- ‘천석 살림은 누 덕택으로 한 줄 아고 쌀 두 되를 괄시하다니. 나도 인자 머잖앴다. 장래를 두고 보자.’ 그 무신 말씀이요?” 물어 보니, “예. 저 건네 박부자 커는 사람이 내 동창생입니더. 중우(바지) 벗고 클때버텀, 대말로 꺼지고 타고 댕긴버텀 죽마고웁니다. 이런데 나는 땅, 지리를 좀 배아가 이 집터를 좀 볼 줄 압니다. 지는 공부마 했다 뿌이지 아무 것도 모르니, 자식은 무정부를 하니 육 형제를 낳아났제, 천지에 아아들이 밥 돌라고 아우성치니 ‘니 집터 하나 봐 도오. 우리 아아들 마 배 좀 불랴 주구로 니 집터 하나 봐 도오.’ 하도 사정을 해싸아 올게 십 년 짼데 아매 삼 년 전에 천 석 치았을 겁니다. 그 늠이 천성(天性) 빈했지요. 쌀 두 되로 괄시하는 것 보소.” “이 천치 겉은 양반아, 이 처자 궁석을 이 고상 시기지 말고 그 집터에가 당신이 세았더라면 삼 년 전에 천 석 채았으만 이렇기 부잘터, 와 나무재이 하고 이 자석 고상 시기노?” 물어 보니, “그 집터에 못 씹니다. 내 집터보다 몬 합니다. 그 집터에 자석이 나마요 참 불효가 나고요, 베실줄(벼슬길)이 끊겨지고 저 무식이 나지요. 형제우애가 없어져부고요, 친구유신(18)-親舊有信.- 이 끊거집니다. 그 늠이 버러 칠년만에 친구유신이 끊거져서 쌀 두 되 괄시하는 거 보소. 천성 안 빈했읍니까?” “그마 당신 집터가 낫으만 와 나무재이 하고 이래 고상하고 있노?” 물어 보니, “나도 인자 금년에 십 년 만인데 때가 다아 됐지 싶웁니다. [청중: 웃음] 인데, 저어 내 집은 현재 나무재이 하고 있죠. 우두막솔로 사지마는 나라 임금이 거동할 집터올시다.” 임금이 방아 떡 안 앉았나? “저어 삽작 밖에 우리 저 대추나무 저어 봤죠? 이 집이 십 년 전에 상낭거던 날, 책을 보니 과묵(果木)을 숨가가 결실마 되면은 성공하리라 거는 집텁니다. 십 년 동안 지내 봐야 대추가 한 개도 안 열리디마는 아 올기라사(올해라야) 한 개 안 열맀입니까? 나도 때가 됐지요. 한 개 열린 거 내 구경만 함 시겨드리겠읍니다. 옥시기디이 만해, 이걸 이런 음석으는 평인이 물 음식이 못 되니, 에라, 우리나라 일국 대왕 숙종대왕님한테 상납할라고 첩첩진봉을 싸가 내 귀(제) 안에 옇어났는데 구경좀 해 보실랍니까? 근나전나 마 이거 할아부지 잡숫고, 혹은 한양빠닥에 있이니 대궐로 찾어가든지 이런 정승을 만내든지 경주 김모야 집에 가서 십 년만에 대추 한 개 열린 것을 나라아 바칠라 거는 것을 내가 묵고 왔다꼬 인사나 좀 해주소.” 거러믄 대집이다 한 대집이 쌌네. 묵어 보이 꿀겉이 달고 향기가 진동해. 묵고 나여 헐끌(허리끈을) 안 늦찼나, 배가 부르다. [청중: 웃음] 양반이 대주 한 개 묵고서 요구 됐단 말, 누 입에서 나왔노? 숙종대왕 입에서 나왔다 그거거등. 이 늠을 떡 먹고 재까치(젓가락) 떡 놓으이끼네 그마 볕이 떠근 나잖아. 그래 천기(天氣)가 둘러댄 기라, 버러. 김씨 봐 주라꼬. 이 리가 주인한테 명백한 주소를 적어 가줄랑, “하일(何日) 하시라도 내가 요청을 하거들랑 한양 성내 한분 놀로 오라.” 이카고, 질을 따라 갔다 이말이야. 그래 그 걸음으로 떠억 인자 한양 올라가가주고 삼정승 육판사 문무대신을 모아놓고, “내가 시방 경상도랑 강원도랑 저어 충청도로 이전, 전부 다 댕기다가 강원도 총석정꺼정 갔다가 오는 순찰했다.” 이걸, 하달로 떡 하, 한 담에, 그 해를 지내고 그 이기, 이 이듬해 삼월달에 과장을 보이는데 팔도선비가 구름겉이 모아들어 과게를 보이는데, 천부다 과게를 다아 시게고 난 뒤에 날랜 조군 서이를 떠억 불러가지골랑, “네는 강원도 골짝이 들어가서 그 중 첨 먼저 미테 잘 보는 이인을 불러 올리고, 그 담에 이 나라 충신대표자로서는 그 담 제사 지내가 술 갖다 붓는 그 사람을 불러 올리고, 경주 김씨의 십 년 만에 대추 한 개 열린 거 내가 묵고 완 그 집을 불러 올리고, 서이 빨리 대령시기렷다.” 캐노이, 이늠들 벼락겉이 마 강원도를 도달했다 말이여. 해가, 떡 더부(데려) 가가주고 저어 대궐에 드가가주는 천부 엎디리서 절을 하고 떡 있이니 숙종대왕이 조회를 마친 뒤에 두상에 금관이요, 몸에는 용포를 걸치고 남향좌향하야 떡 앉이가아, “저 밑에 있는 백성 서이는 고개를 들어 대성을 쳐다 보라.” 캐, 떡 치바다 보니 작년 그 저거 집에 자고 갔던 영, 그 영감 아이가. [청중: 웃음] 삥글시 윗이먼, “이 과인을 위하야 한양 성내꺼징 오니라고 수고가 많겠구러. 이리 올로 오라.” 그래 떡 불러 올리놓고, “그래, 내가 그대 서이를 부린 원인은 뭐어냐 하민은 하룻밤 신시도 짓을 뿐더러 여 아는 기 많애. 하니, 뭐어가 소원인지, 소원대로 말로 하마 내가 소원을 함 풀어줄테이 차례로 말하라.” 그 중 첨먼저 그 제사 지내가 술 갖다분는 이 사람이 떡 껄레가 앉네. “뭐어야?” “아무 소원이 없다.” 이카거등. “사람이 오늘 사다가 내리(내일) 죽어도 설만은 믿고 사는 형편인데 와 뭐어시가 없다 말이고?” 물으니, “저는 뭐 논도 한 오십 마지기 부치고 머심이 한 도옷 되고 남 준 소도한 여남 바리(마리) 됩니다. 아무 꿋도 그리운 기 없으나마,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뭐어냐?” “우리 갓이 없어가 남우 갓에 나무하다가 머슴이 지게를 한 도오 분(대엿 번) 뿌지껬는데 나무 끄어 맘대로 해 땔 수 없소?” 이카거덩. ‘마음만 충신이지 마 글을 모리고 마 무식하니 촌구석에 사는구나’ 싶어가주고, “아, 그가지. 여봐라, 여게는 갖다가 강원도 총석정 골짝에 그 마을 선달로 봉해 조라니. [제보자: 요시 겉으마 산림기수다.] 맘대로 해 때라.” 그 담에 인자 미테 보는 그 풍수를 불러올리가, “그대는 뭐어가 소원이양?” 물어 보니, “자각없는 소신이 뭐 큰 벼실로 바래지까마는 우리 고을에 장관 하문시게주먼 낼 죽어도 한이 없겠소이다.” “음, 그 골 성주로 봉해 조라.” [청중: 그거 잘 됐다.] 경주 김씨에 그 분 불러 놓고, “그대는 특별히 봐 줄 수가 있다. 금이만 금이고, 은이만 은이고, 동이만 동이고, 베실이만 베시고(19)-벼슬을 원하면 벼슬을 주고.- 마음대로 마 베짱대로 함 이야길 해봐라.” 물어 보니, “저는 은도, 돈도, 보석도, 동도 다아 필요없고 어명을 받들어서 팔도 강산을 내 발로 돌아댕기믄은 잘못한 늠은 내 발, 내 손으로 능지처참시기고 잘 한 사람은 상갑 주기 하는 권리를 주옵시먼 인지 죽어도 한이 없겠소이다.” “크라지, 용생용(龍生龍)이요, 봉생봉(鳳生鳳)이라 하디이 과대(過代)에에 그대의 행동과 똑같구나. 으음. 아나 이거 받아라.” 말 시 바리 길린 어폐, 삼남 어사라. 그러이께 이 늠을 떡 내조가 그 어사를 시기가 떠억 내리왔거덩. 그 서이가줄랑 전부다 그 참 그 숙종대왕님 자기가 하룻밤 잰 바람에, 전부다 잘 됐거등. 잘 돼가줄랑 있는데, 요기 인자 전편이 끝나고 후편 잇우끼요, 또.한국구비문학대계 7-13 본문 XML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