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제목
원귀를 귀신통에 넣은 김판서
자료분류
설화
조사자
김선풍, 유기태
조사장소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조사일시
1983.05.24
제보자
김금자
조사지역
강원도

구연상황

집안 이야기를 한참 한 후에 집안 할아버지께 신 삼으며 들은 이야기라며 구연하였다.

채록내용

조사지역: 강원도/영월군/영월읍
    분류코드: [영월읍 설화 243] 
    테이프번호: T. 영월 41 뒤
    조사장소: 덕포 2리
    조사일: 1983.5.24.
    조사자: 김선풍 유기태
    제보자: 김금자(여, 50세)
    원귀를 귀신통에 넣은 김판서
     * 집안 이야기를 한참 한 후에 집안 할아버지께 신 삼으며 들은 이야기라며 구연하였다. *

이제 김판서하고 이판서가 서로 앞 뒤 집에 살았답니다. 그래, 앞 뒤 집에 살았는데 어, 그 이판서 아들이 얼굴이 노래가지고 병에 걸려 앓으니, 세상에서 그럼 판서의 아들인데 뭐가 없읍니까? 뭘 세상 약을 숫한 약을 써도 못 고쳤단 이야기죠. 그래서, 지금은 식모로 살다가 남의 집에 딱 옮길 수도 있는데, 옛날에는 그 사람한테 하마 종질하러 들어 가면요 그 집이 망할 때까지 거게 있거든. 그 집이 망하면 울어요. 그냥 종들이. 그래서, 인제 예 늙어 죽는 거예요.
그래서, 이판서 아들이 그렇게 수삼 년을 좋은 약을 써도 앓고 이래 안나니 그래서 종끼리 물에 나갔데요, 이판서 종하고요. 몸종하고 또 김판서 몸종하고 웃물에 이래 나가니까, 이판서 몸종이 아주 출출 울더래요.
그래서 김판서 몸종이 그래더래요.
“너는 왜서 그래 우느냐?”
다 같은 직업이니까 몸종끼리.
“그런기 아니라 우리 집에 도련님이 인제는 수일 내로 돌아 가실 것 같으니, 돌아 가시기만 하면 나는 밥 먹을 곳이 없다.”
이래며 울더래요. 그래서, 
“그런게 아니라, 내가 그러더라고 하지 말고 이판서님한테 가서 우리 김 판서가 참, 용맹하니까 자네 아들이 내 아들이고 내 아들이 자네 아들이니까 처음으로는 고쳐 달라는 소리를 하지 말고 웃음으로 다 농담으로 다 조롱하라. 서로 농담부터 나눠가지고 내중에 가서 농담이 되거든 자네 아들을 내 아들로 생각하고서는 곤쳐 주게.”
이렇게 하라고 시키더라는 거야요. 저 김판서 몸종이요. 그래서 이 분이 들어 와가지고 이판서한테 인제 얘기를 했데요. 얘기를 하니까 김판서하고는 도방사이니까, 고만 판서찌리(끼리) 모이면 외지로 나가면 판사지만 서로 만나면 친구간이 아닙니까? 그래, 그래서 조롱도 서로 서서히 웃음 소리를 내가며 그래갔데.
“자, 그런게 아니라 참, 인제는 삼대 독신 외아들이 사경이 된다. 이런 얘기, 자네 아들이 내 아들이고 내 아들이 자네 아들이 아닌가? 이래니 고쳐 주십시오.”
이래니, 그래 참 하머 알고서 그래 그래 그 김 판서는 머리에 떠돌아 갈 때 누가 그랬다는 걸 알지요. 그렇게 물으니, 
“자네 내 시키는 대로 할라는가?”
하니, 
“하지요.”
“그대, 자네 큰 이 질(길)로 가가지고 후면 별당 앞 다 쓸고 먼지도 하나 못 날아 들어오게 해 놓고, 내 혼자만 드나 드는 문을 해 놓구서 저 술 다섯 초롱하고 떡 닷 말하고 찰떡 닷 말하고 그래 해다 놓고서는 아주 딴 사람은 금지도 못하게 하고, 내가 저녁에 건너 갈 테니까 자네는 한데서 그냥 듣고 있게.”
그래서, 그 분이 건네와가지고 참, 판서의 집에 뭘 없읍니까? 시간 내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는 참, 후면 별당을 지어 놓고서는 그 질로 그냥 나가죠. 고런 것 다 준비를 해 놓고서, 그 분이 건네 와서 비는데 한데서 꼭 듣지요. 자네는 떠나지 말고 꼭 내 목소리만 들어라. 그래서 그 분이 그 집에 지금 우리들 안택을 하면 존신이 다섯이래요, 집에. 존신들이, 높은 존신들이 그래 그 집에 최상 높은 존신을 불러가지고, 
“이 집이 어떻게 돼서 삼대 독신이 수삼 년을 앓느냐.”
“저는 이 집에 재산 관리나 하지 다른 것은 모릅니다.”
“그래.”
떡 한 말하고 술 한 말하고 먹여 보냈지요. 둘째 존신을 불러가지고, 
“이 집에 어떻게 돼서 그렇게 사연이 됐느냐?”
물으니, 
“나는 이 집에 사람들이나 이렇게 뭐, 몇 숫자만 알지 그건 모른다.”
또 한 몫씩 떼 멕이고 셋째 존신을 부러가지고 또 역시 그래 물으니까 역시, 
“저도 모릅니다. 자손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이 집에 농사나 잘 짓게 해 드리지요.”
넷째 존신을 불러도 역시 자손에 대해서는 모른는 거야. 그래서, 다섯째 막내 존신을 불러가지고, 그래 막내 존신이라는 거는 지금 우리 부모님들이 삼신 할머니로 하는 거로 제일 낮아요. 제가 안택을 해 볼 때에는 제일 끄트막에다 줍니다, 뭐든지 그래서 그 막내를 불러가지고 그래니, 
“예 저는 알 수가 있읍니다.”
“그래.”
그런 기 아니라 우리 집 여기 대감님이, 이 대감님이 그전에 아주 청춘 과부가 사기 장사를 왔어요. 사기 장사를 왔는데 참, 이 분이 해먹을 길이 없으니 사기를 한 광우리 이고서는 우리 대청 마루에다 갖다 놓고, 
“사기를 대감의 집에 사시요?”
이러니까, 그 이 판서가 용상에 올라 앉았다가 버선발로 뛰어 내려 와가지고서는 그릇을 살려고 만지거리니까 마루 끝에다 이래 놓고 만지거리면서는 이 사람은 팔 궁리로다, 
“대감님, 이게 이쁩니다.”
“저게 이쁩니다.”
그릇을 내 놓으며 그래니, 이대감이 그것 그릇 살 생각은 안하고 과부의 젖통을 주물렀단 말야. 그러니, 그런 판사의 집에 그런 거동이 나니 이 여자가, 지금은 과부가 되면 그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요, 그저. 그 때는 과부가 되면 참, 가지 못할 형편이지. 그러니까, 
“대감님, 그 젖통이 그렇게 탐이 납니까?”
말이야. 그래며, 자기 단도로 젖통을 베어가지고 대감님한테 확 던져 줬지. 판서의 집에 그런 거동이 나니 이 시체를 어따가(어디에다가) 처치를 하느냐. 그래서는, 자기 저 뭐, 수채가 있다 말이야. 수채를 뚝 띠고서는 시체를 거다 넣다. 그래니, 지금도 가서 그 수채를 열어 보면 시체가 썩지도 안하고 생생하게 있다 말여. 그 집에 그래서 그 원혼 신이, 원혼이 돼 가지고 이 집에 아주 원수를 가릴라고 삼대 독신부터 잡을려고 그랩니다.
“그래.”
그래서, 거 마지막으로 떡하고 술하고, 마저 먹여 보내고 인제 그 때서는 김판서가 앉어가지구서 존신(尊神)을, 그 원혼신을 불렀답니다. 불러 가지구선, 
“너 어떻게 돼서 이 집에 와서 원수를 가릴라고 그러느냐?”
참, 고대로 역사를 내리 읽거든요.
“제가 장사를 했는데, 이 집 대감님이 지(제) 젖통을 만지길레 베어서 던졌더니만 제 시체가 안즉(아직) 저 수채에서 썩지도 않았읍니다.”
“그럼, 니가 그럼 니가 그렇게 용렬하고 잘아느냐?”
“잘 알지요.”
“그럼, 나하고 내기를 할까?”
인제, 김판서가 그래니, 
“너 재주가 그렇게 좋고 이래면 나하고 내기를 하자.”
그래, 그래서 버드나무 잎파리로 그 요술을 김 판서가 부리니 버드 나무 잎파리고 배를 인제 이래 띄워 놓고서 물을 해서 띄워 놓고서는, 
“너 양산을 들고 요 곁으로 가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이래니, 
“노래 부를 수 있다.”
참, 그 어느 신이 양산을 해 쓰고 버드 나무 뱃가로 돌아 가면서 노래를 부르거든요. 그러니, 아, 이게 용하기는 용하다.
“그러면, 또 한 가지 나하고 내기를 하자.”
그래, 인제 빙(병)을 갖다 놓고선, 
“너 양산을 들고 빙가로 돌아 가며 노래를 부를 수가 있는가?”
이래니, 
“부르지요.”
“그럼, 나는 요 빙 안에, 김판서가 나는 빙 안에도 들어 갔다 나오는데, 너는 들어 갔다 나올 용기가 있느냐?”
“나도 거기 들어 갔다 나옵니다.”
그거야. 그래서, 대감이 먼저 빙 안에 들어 갔다 나오며, 
“거 인제 원혼신이 나도 들어 갔다 나온다.”
구. 거기를 들어 갔읍니다. 들어갈 때 고만 찰떡을 가지고 똑 틀어 막았답니다. 그래, 지금 미신을 하면 그 묶고 뭐, 호박을 가지고 놀구 뭐, 귀신통을 만들고 그래지요. 그래서, 지금 그 가두는 방법이 나고요, 무당들이 지금 굿하고 싹 돌아서 가도 인사 안하고 문에다 칼 가지고 드르륵 긋고 인사 안 받고 갑니다. 그래, 그 식으로 그러니, 김 판서가 참, 옛날에는 용했답니다. 그래서, 참, 그래고 나니 그 집 아들이 참 삼사 년 앓던 것이, 밥도 못 먹던 것이 일어나가지고, 
“엄마 밥 줘.”
이래니 뭐, 성공했잖오. 이래니까 인제 김 판서한테서 이 대감이 들어 보니 기가 맥히거든요. 자기가 잘못핸 것이니까. 그래서 인제, 그 대감이 김판서가 얘기를 하고는 뒤도 안 돌아 보고 갔다 이말이야.
“그 집에서 뭐, 식사를 좀 하고 가세.”
내일 아침에 해 놓고 나를 부르라 이말이야.
“잘 한 상을 자네가 낼 아침에 해 놓고 날 부르면 내가 근너 옴세.”
이렇게 하고서는 그냥 갔지 뭐. 그래가지고, 이판서가 아침에 잘 한 상을 잘 차려 놓고서는 김 대감 집에 가는데 도랑을 건너서 그 집을 가니까 집도 싹 달아 나구 없구요. 마당 가에 큰 배나무가 아람드리가 있는데, 그 종을요 철사를 갖다가 혀바닥을 꿰서 배 낭기에다(배나무에다) 매달아 놓고 간 곳이 없더래요. 그렇게 김 판서가 용하답니다. 내가 용한 것을 어떻게 그래 파탈을 냈느냐 이거지. 그래 이 쇄(혀)바닥을 철사에 꿰서 배낭개다 매달아 놓고 집도 달아나가지고 행방 불명이 됐어요.
그래서, 지금 무당들이 점쟁이가 뭐하고 그러니 지금 시시한 무당들이요 뭐, 가두는 기면 뭔 가두는 거다, 굿이면 굿인가 보다 그걸 몰라요. 여, 영월무당들이 숱합니다. 그래서 제가 무당들하고 이래 얘기를 잘해요. 이게 어디서 가두는지 가둘 줄을 몰라요. 어느 사람이 가두는 방법을 내 놨는가 그걸 모른다고요. 그래, 제가 인제 얘기하지요. 이건
김팔룡이라는 분한테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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