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제목
의상대사와 원효대사의 사찰 창건과 득도
자료분류
설화
조사자
김선풍, 장정룡
조사장소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조사일시
1981.04.17
제보자
유만석
조사지역
강원도

구연상황

제보자는 이야기 하는데 신이 나서, 조사자가 유도를 하지 않아도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 하나 해야겠다,”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채록내용

조사지역: 강원도/속초시
    분류코드: [속초시 설화 23] 
    테이프번호: T. 속초 3 뒤
    조사장소: 설악동 170번지
    조사일: 1981. 4. 17.
    조사자: 김선풍, 장정룡
    제보자: 유만석(남, 50세)
    의상대사와 원효대사의 사찰 창건과 득도
    *제보자는 이야기 하는데 신이 나서, 조사자가 유도를 하지 않아도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 하나 해야겠다,”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산에 계시다가, 그 도를 통해 가지고 그 가만 있다가 정세가 너무 골치 아프니 영동이나 한번 돈다고.(1)-다녀온다고- 저 아래 그 영동 저 남해 부산쪽에서부텀 올라 오면서 그 새가 인제 질(길) 안내를 한단 말이야.
새가 질 안내를 해 가지고 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데, 그 대사 눈에만 보여요, 그 새가. 그래 새가 앉아서 쉬는 데는 대사도 앉아서 쉬어야 되고, 새가 저물어도 가지 않고 쉬면, 또 자야 되고, 새가 날아 가면 날라 가고. 인제 대사는 그래구서 인제 새 질 안내를 받아 가면서 영등으로 이래 올라 오는데 어딘가는 오다 보니까, 대낮인데 바우(바위) 절벽 밑인데, 아, 새가 거기 앉아. 그 대사도 역시 거게 앉아 있는데 난데 없이 그 80명의 마적단들이 칼, 도끼, 낫, 창을 들고 와하고 어디 어느 바위 틈에서 나와, 대사를, 
“찔러 죽인다.”
고 하니 그 대사는 신의 조화로 인하여, 그 집채같은 돌이 공중에 붕 떠가지고 ‘붕’ 소리를 내면서, 그 주먹만한 돌이 막 바숴 지면서 떨어져 내려 오니, 이 마적단들은 높은 스승님인 줄 알고, 그제서부텀(부터는) 거게서(거기에서) 굴복하고, 엎드려서 빌고. 이래 가지고, 그래니 새도 날아가지 않고 하니까, 며칠 인제 거게서 계속 묵어 가지고, 그 사람들을 인부로 사용해 가지고, 거게서 도장을 창건했지요. 도장을 창건하고, 그 사명이 부석사라고, 영주 부석사, 부석사를 창건하고 그 사명이 부석사라고 영주 부석사. 부석사를 창건하고 그 마적단들을 전부 승려로 만들어서, 인제 태백산 부석사에서부텀 원주 비문사, 금정산사, 나막사, 화엄사니, 통도사니, 해인사 등 이렇게 10여개 사찰을 대사가,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그 사람들을 승려를 배차시키고, 그리고 새가 날라 오니까, 새의 안내를 받아서, 여게(여기) 양양 고을이라고 하는데 쓱 올라와 보니 이곳은 가장 경치가 좋고 아름답다 해서, 여기다가 인제 사찰을, 사찰이 아니지 지금은 사찰이라고 하지만 사찰이 아니지요, 호국기도원장으로 창건하고 수도를 했읍니다.
그것이 오늘날에 와 가지고. 그전에 낙가사(洛伽寺)라고 불리었다가, 낙산사라고 하는 데가 바로 그 자립니다. 그리고 그 낙산사는 관동 8경 중 우의를 자랑하는 사찰로서 신라 문무왕 1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오늘날에 와서는 누차에 6·25 사변 때 파손되었었읍니다. 그래 누차 중건, 재건하고, 그래 오늘날에 현재 그대로 인제 중건하고 지끔 오늘날에 와 가지고, 유적으로 있읍니다.
그래 의상대사는 거게서 인제 낙산사에서 수도할 적에 원효대사는 영혈사(2)-所在: 襄陽郡 襄陽邑 禾日里. 설악산 동남방 冠帽峯 아래에 있으며 신라 神文王 8년 乙丑 元曉大師의 창건으로 처음에는 元曉가 설악산에 와서 日出庵을 건립하다가 2년 후 靈穴寺와 靑蓮庵을 지었다. 조선조 숙종 16년 庚午에 大師 聚遠이 前年에 燒失한 基址에 重建하여 靈泉이라 개칭하고 또 聚遠庵을 지었다. 사찰의 서방에 靈泉이 있으므로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肅宗 42년 丙申에 大師 鶴天이 사찰의 북쪽 10여리에 鶴巢庵을 지었는데 繼祖 26년 丙戌에 폐지하였다.-에서, 영혈사라고 하면 낙산사 뒷 골짜기 그 계곡으로 올라가면 쪼끄만(조그마한) 절인데 그 영혈사에서 수도 했지요.
그래 낙산사 저 홍련암, 홍련암, 보타굴(普陀窟)(3)-일명 관음굴-이라는 데 거게 가면, 물이 나오는데, 그 산에서 나오는데 그게 원효대사가 영혈사에서 구절장을 꽂아 가지고, 영혈사에서부텀 그 물맥을 뚫러서 내러 보내서 그 물이 나온다고. 그 나와요. 구절장 구절장이라고 하면, 그 지팡이를 쫒아 가지고, 그 전설의 하나지요. 그럼 물이 나온다고.
의상대사하고. 원효대사는 이종 사촌간이고 원효가 인제 세 살 위지요. 의상이 세 살 아래고. [조사자: 도를 어디서 닦았지요?] 
도를 닦은 거는 원래 저 고구려, 삼국시대 때 고구려에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왕위에 올라 있어야 되는데, 자기 사촌 보장을 왕위에다 올려놓고 연개소문이 정권을 손아귀에다 넣고 흔들었읍니다. 그때 당시 한 때 그랬는데, 그 연개소문이 고구려에서 불교를 배반하고 불교를 전부 인제 내쫒게 되었어요.
그래서 고구려에 높은 스님, 보덕화상, 보덕화상이라고 하는 스승님은 아주 도가 통달하고 아주 높은 스승입니다.
그래 스승님도 인제 연개소문이 그 스님도 내쫒을라고 하니 그 보덕화상은 미리 알고 있어요.
“아, 연개소문이 배반하고 우리 내쫓을라고 하는구나.”
그 내가 갈 길을 가야 되는데. 어디로 가나 하면. 그 암자를 가지고 보덕화상은 고구려에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백제 고달산으로 고대로 자부동(방석)을 방개 치고 자부동 앉은 채로 유물이 전부 밤 사이로 그 백제 고달산으로 옮기게 되었읍니다.
그래 백제 고달산에 옮기게 돼서 그때에 인제 원효가, 원효가 인제 행자로 거게서 인제 보덕화상 밑에서 있었읍니다.
그런데 보덕화상은 보통 인제 눈에 뜨일라고 해야 띄지, 같이 이래 방안에 있어도 띄지 않아요. 그래 인제 훈계나 할 적에 나타나 가지고 훈계하고 그래 인제 동자가 인제 훈계를 받고 그래서 인제 원효가 고달산에서 행자로서 있을 때 얘기했읍니다.
그리고 그때는 이 의상대사는 의상대사는 황룡사에서 황룡사에서 인제 동자로다가 있으면서 한 날 밤에는, 환하게 불이 비춰 오니, 그 의상이 스승에게 묻기를, 
“스승님 저 불이 무슨 불입니까?”
하니, 
“아, 높은 스승이 우리 황룡사(黃龍寺)에 인연이 있다고 해서 비춰 주는 불이다. 그러니 너는 의상, 너는 내일 고달산 백제 고달산으로 가거라.”
그때 삼국 시대에 참 이런 걸, 들고 서 있지만 그분이 눈에 띄지 않게 옆으로 지나가도 눈에 띄지 않게. 그래도 의상도 역시 백제 고달산으로 가서 그때 처음에 그 원효를 만난 게 인제 거게서 행자끼리 서로 만나게 되었지요.
그래 행자끼리 만나게 되어서 그래 인제 배 고파서 의상이 하니
원효가 인제 알고 보니 이총 사촌간인데 나이가 세 살이 위고 그래서, 
“승형, 승형 !”
하고 있었는데 밥을 먹으라고 갖다 주는데, 뭘 갖다 주나 하면, 도토리 삶아서 욹은 거에다가, 문들레(민들레) 문들레를 또 삶아서 욹은 걸 그걸 한데다 개 가지고 그걸 먹고 수도를 했어요.
근데 그걸 식었을 때 보면, 새까만 에 똥 모냥 이렇게 생긴 걸 인제 먹고 수도를 했읍니다.
근데 한 때는 보덕화상이, 
“느는(너희는) 원효와 의상은 가서, 딴 데 가서 도를 통해라. 저 당나라 중남산이나, 원나라 윤재사, 개국사, 이런 데 가서 중국에 들어 가서 도를 통해라. 그래 가는 도중에 원효는 도중에 가서 도가 통할 것이다.”
그래 인제 가겠다고 인사를 하고 의상과 원효는 둘이 인제 떠났는데 그래 접경을 지나갈 때는, 그 높은 스승의 술법으로 인하여 눈에 띄지 않게 그냥 지나가요. 그래 어딘가는 와 가지고 그때는 당나라를 건너 가는 배가 어디서 갔나 하면 수원서 밑으로 내려 가지고 안양, 경기도 안양이지요. 경기도 안양에서 그 지도상으로 보아도, 당나라에서 뾰족하게 그 안양쪽으로 되었어요. 인제 그게 가차와요(가까와요). 그 안양에서 당나라로 가는 배를 탈 수가 있었는데 그래서 안양에를 갔는데, 둘이 인제 안양을 갔는데, 밤이 되는데 비가 어떻게 쏟아지는지 아주 눈을 못 뜨도록 비가 쏟아져 가지고서 그 비를 어디 가서 좀 멈출 데가 없나 하고 그늘을라고(피하려고). 그래 먹지도 못하고 비를 촐촐 맞고, 밤 몇 시가 되었는지 알 지도 못하고 어디 가서 인제 그늘을 때가 없나 하고 그것만 인제 찾고 그 안양 해변가로 돌아 댕기며(다니며) 보니, 어딘가는 막살이가 같은 게 있어서 들어 가서 인제 의상과 원효는 워낙 피곤하니까 뭐 돌아 볼 사이도 없이 의상은 인제 드러 누워 자고, 원효는 자다가 어찌 목이 말라서 두리번 두리번 찾아 보니 더듬어 보니 둥그런 게 있거든요. 둥그런 게 있는 게 그전에 촌에서 박을 심어 가지고 뒴박이라고 해서 파 가지고 그 안에다가 물을 담아 먹고, 뭐 쌀도 담아 두고 하는 뒴박이 있어요. 그 뒴박인 줄 알고 흔들어 보니까 물이 있으니까 그걸 그 목이 말라서 마시고 잤는데 그래 자고 일어나 보니까, 그게 뒴박물이 아니고 해골 바가지 물이라고, 그래 거기서부텀 거 해골바가지 물을 받아 먹구서 물을 먹구서 거기서 도가 터서 그래 의상은 인제 그걸 모르고, 
“성 갑시다.”
하니, 
“아이, 난 안 간다. 너 혼자 갔다 와라.”
그래서 원효는 안 가고, 거기서 도가 터서 안 가고 의상만 당나라에 들어 가서 당나라 종남사, 지상사, 원나라 윤재사, 개국사를 통해 가지고 20년 동안 도를 통하고 고국으로 돌아 와서 신라 제 28대 진덕여왕 밑에서 국사로 계시다가 영동으로 들어 오면서 부석사를 창건하고, 여태꺼정 그 사명이 바뀌긴 누차에 바꼈지만, 우리 나라에 이런 절 이름이 많이 바뀌어도 영주 부석사라고 하는 것은 글자도 그대로 뜰 부자, 돌 석자예요. 그게 부석사입니다.
돌이 떠 가지고 부서져 내려 왔다. 그래 그건 여태 변함 없는 사찰의 이름이 현재 역시 거 이름이 견고하고 전해 내려 오고 있는 사찰이 변함없읍니다.
[조사자: 거게 그 양양 낙산사 거게 청조가 있던 데요. 그 새들 이름을 청조라 그래요. 청조라 해서 보기가 희귀한데 그 밑에 말이죠, 바위 밑에만 거 구멍 뚫어진 데, 새가 있던데.나도 한 번 봤어요. 그게 바로 그 스님을 안내해 주던 새라 그래요.] 
네, 그게 보타굴입니다. 보타굴에 그게 보타굴에 파도가 쳐서 들어올 때에는 그 뭐 바우(바위) 굴이 설악산까지도 뚫렸다는 전설이 나와요.
그게 홍련암 밑에 마루 밑으로 보는 것 그게 보타굴이예요. 그게 그래가지고
설악산까지도 돌이 뚫렸다 하는 얘기도 있고. 그래 인제 청조가 보이죠.
그 뭐 얘기야, 뭐 동해안 얘기가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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