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상황
“저- 얘기를 한 마디 하겠읍니다.” 하면서 선뜻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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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지역: 충청북도/청주시/내덕동 분류코드: [내덕동 설화 7] 테이프번호: T. 내덕 2 앞 조사장소: 내덕동 269-17번지 청주국악원 조사일: 1980.8.22. 조사자: 김영진 제보자: 김광식(남, 38세) 임금의 시를 대귀하고 산주가 된 신관익(申灌翼) *“저- 얘기를 한 마디 하겠읍니다.” 하면서 선뜻 시작했다.* 어느 대왕때냐 하면 일종의 문장(文章) 신문장(申文章)이란 호를 가진 얘기인데요. 신씨에는 납 신(申)자 신씨가 있고 쓸 신(辛)자 신씨가 있는 걸로 알고 있읍니다. 그런데 납 신자 가신씨인데 근데 성이 중시조(中始祖)지. 중시조가 누구냐하면 신문장이란 호를 따서 중시조가 된 얘기를 한 마디 하겠읍니다. 그 위치는 어데가 위치냐 하면 경북 상주군 모동 모설을 중심으로 한 파령산 백화산(白華山) 덧집이 하나 있어요. 그 덧집에 가면 신씨네가 한 백집을 이루고 있는데 그 신씨를 이르기를 일명 덧칠 신씨라고 합니다. 이 덧칠 신씨네 유래를 보게 되면 언떤 일이 있느냐 하면 옛날 얘기로 봐서, “10년대가 선비요, 20년 돼야 학자요, 30대와 문장이요.” 이런 말이 있어요. 그 참 유복한 가정에 태여나 가지구 이름은 물댈 관(灌)자, 날개 익(翼)자 신관익(申灌翼)이란 사람이여. 참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가지구 참 공부를 하다가 나이 이팔(二八)이 되어 가지구 열 대여섯 되니까 그 동네 친구들이 낭구를 하러 댕겨. 그래 파령산 중턱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파령산 산주한테 들켜가지구 나무에 붙을려 매가지구 하루 종일 죽을 고생을 했다는 거여. 이거 참 옛날 애기여. 그래 이 사람이 골수에 맺혔어. “내가 커가지구 이 파령산 산주가 꼭 되야겠다.” 그런 맘을 가지구 어언 20년 세월이 떡 흘러가지구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배워 가지구 나이가 한 40이 돼 가지구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구 클때 안방글로 배우긴 많이 배웠는데 방향을 안해 봤다 이말여. 이 사람이, 그래서 한양이 어떨고 한양에 가면 궁이 어떻고 다 알어. 다 아는데 이론적으론 알었지만 실질적으로 가보던 못 했거든. 그래 어떤 방향이 맞는가 이젠 과거를 보려고 한 것이 아니고 한양 구경을 갈려고 짚신을 두 짝을 짊어메고 이제 한양으로 떠낮어. 한양을 떡 떠나가지고 한양에 도착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상호(商號)가 멋지게 붙어 있으니께 ‘이게 여관이다’ 뭐다 파악할 수가 있지만 [웃으면서] 다 알 수가 있지만 가 보니까 일몰(日沒)했어. 해가 저물어 가지고 돌아 댕기다 보니까 한양을 가구 보니까 넓기는 넓은데 어디가 자는건지 어디가 밥을 먹는건지 분간할 수가 없어. 참 남대문입납(南大門入納)이다 이거여. 그래 가지구 제일 굵은 집을 찾아 간다고 한 것이 숫채구멍으로 들어가 가지구서 어데를 들어 갔느냐 하면 바로 그게 궁궐이야. 수채구녁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말이여. [웃으면서] 그래 떡 들어가서 대청에도 못 들어가구 밀에 가서 짚신짝을 비게 삽아 떡 들어누어 있는데 한 밤, 그 날이 보름날인데 이제 한 밤중이 떡 돼고 나니까 마루가, “쿵, 쿵.” 울리면서 글소리가 읊어나오는데 뭐라고 읊어 나오는고 하니, [시조가락으로] “금옥(金玉)이- 비보(非寶)요- 보현신(寶賢臣)이라, ” 아 이런 문귀가 딱 읊는단 말여.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금과 옥이 보배가 아니요 어진 신하가 보배더라. 그래 바로 그 위에니까, 그 양반이 바로 어떤 대왕이냐-하면 하루에 천 리 기왕을 하던 바로 [조사자를 보면서] 세종대왕이지요? [조사자: 예] 예 바로 그 왕이란 말여. 그래 마루 밑에서 글은 많겠다. 엉겹길에 받아 한다는 얘기가 근데 받아하기 전에 마루 위에선 그 짝대를 맞출랴고 왔다 갔다 하는데, 왕이. 그 짚신을 베고 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며 하는 얘기가 [시조가락으로] “일원(日月)이-불명(不明)이오- 명성주(明聖主)이라” 해와 달이 밝은 것이 아니라 착한 임금의 성덕에 밝다. 아 대가 멋지게 이루어졌단 말이여. 자 금과 옥이 보배가 아니요 어진 신하가 보밴데 해와 달이 밝은 것이 아니오 착한 임금의 성덕이 밝더라. 대가 그만 기가 막히게 맞었거든. 그래서 인제, “여봐라.” 인제, “예-” “마루 밑에 사람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금수라도 객실로 모셔라.” 방으로 들어 갔어요. 보니까 사람을 보니까 참 산꼴 무지랭이로소 볼 수가 없어. 볼품없는 사람이나 그 대를 이어준 글 한 마디에 그만 임금이 녹아 버린거여. 그래 주안상을 떡 차려놓고 보니까 산해진미여. 자기로서는 도저이 [웃으면서] 학술적으로 공부할 때 말만 들었지 눈으로 보긴 처음이다. 그도 음식을 먹어보긴 처음이거든. 그런데 인사를 나누는겨. “나는 한양 사는 이첨지요.” “아 그렇소. 나는 상주 사는 신관익이라는 사람이요.” 그러구선 인제 밤새도록 글로 문답을 하는데 그 한 마디하면 한 마디 짝이 나오는데 이루 말할 수가 없어. 그러다 보니까 계면성(鷄鳴聲)이 턱떡하고 나니까 조신들이 신하들이 아침 조회에 나오것거든. 이거 안 되겠거든. 그래가지고 인제 시종을 불러가지고 내보냈읍니다. 인제, 그래. “과거를 보이면 이 사람이 틀림없이 올 것이다. 그때에 이 사람을 등용을 하리다.” 그러고 보냈어. 그래 신관익이 [웃으면서] 나와가지구 그때 학술, 글짝이나 한 사람이니까 예의는 환-하다 이거여. “아 내가 간밤에 그런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어이 내 이첨지보고 인사두 안 하구 갈 수가 있느냐?” 그래 버젓하게 정문으로 들어갈랴구 하니까 파수꾼이 들어 가게 해여? 어림도 없는 얘기지. 그래 인제 인사를 못 하구서 사실 경북 상주를 내려 왔다 이거여. 그래 귀향을 했어. 그래 그 이듬해 이첨지를 꼭 만나러 가긴 가야겠는데 해 가지고 갈게 없어. 그래 파령산에서 도토리를 잔뜩 따가지구 그 색끼줄로 얽은 그 어 들먹 응 그렇지. 거기다 짊어지구 잔뜩 짊어지구 또 짚신을 짊어지구 인제 한양 이첨지를 이제 은혜를 갚으려고 인제 찾아 갔어. 떡 가고 보니께 들어갈 도리가 없어. 그래 하루 이틀 사흘 있다 보니께 엿새를 인제 엿새째 칠일째 마지막으로 판가름으로다 들어가든지 못 들어 가든지 인제 들어갈 판이여. 그래, “이첨지가 내 친군데 왜 못들어 가게 하느냐?” 아 이런 쌈을 할적에 그때에 인제 왕이 정원을 거닐었어. 조금 있다가 이첨지 뭐니 하니까 작년 생각이 나거든. “뭐가 이리 요란한고? 들어 오너라.” 그래 들어 왔어. 그래 들어가 보니까 [웃으면서] 좀 눈치가 있었으면 좋았을껄. “아이 이첨지 오래간만일쎄.” [웃으면서] 아 그럭한단 말이여. 어? “그래 들어 오라.” 구 그래 가서 보니까, “옷 한 벌 내주고 지금으로 말하면 목욕을 시키고 그렇게 하라.” 그래 준비할 동안, “덧집 사는 신관익은 복계하고 부부하라.” 임금 앞에 엎드려란 얘기죠. 엎드릴 복(伏)자, 그래 간만이, “고개를 들라.” 하는데 보니까 듣던 음성이여. 가만이 보니까 왕관을 떡 쓰고 임금 왕(王)자가 붙은 곤룡포를 껴입고 앉았는데는 인전 죽었어. [크게 웃는다] 사시나무 떨덧 햐. 그래서 그 임금이, “그 신관익이란 사람은 위인(爲人)은 불출(不出)이라. 그 대가리 속에 든 학문이, 학문을 사랑한 것이지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였다.” 이거여. 그래서, “네 소원이 무엇인고?” 그래 물으니께, “예 저는 다른 소원이 없읍니다.” 그때는 외직이 됐던 내직이 됐던 응 삼정승 육판서는 안 되겠지만, 이조판서 교리 한 자리 달라고 준다 그거여. 그런데 이 사람이 골수에 맺인게 있어. 파령산에 가서 그 나무할 때 욕 본 그 생각이 나서, “파령산 산주가 되면 원이 없겠오.” [웃는다.] “그래? 그러면 파령산 산을 니 앞으로 그러면 주마. 산주되게 주마. 그래 딴 소원이 없는고?” 물으니까 하는 얘기여. 그래 한양을 도착해 가지고 신관익이가 서울, 한양 구경하다 보니까 그 그 어떤 벼슬하는 높은 분들이 지나가면. “여봐라-” 하는 그 앞에 그리고 그 시민들이 어? 굴복을 하거든. 그 명령 한 마디에. 시민들이 굴복하니깐 그저 그보다 높은 사람이 없어 그 한 마디에 굴복하니까 그래서, “여봐라하는 그것만 시켜주면 원이 없겠읍니다.” [웃는다] 그래서 그 왕이 한탄하기를, “어허 관운(官運)이 가지(可知)로고.” 관운이 없으면 안 된다. 이거여. 그래서, “이 좋은 기회를 놓혔으니 너를 그냥 보낼 수 없어. 그래서 호를 주는데 호를 주는데 문장(文章) 호를 주마” 그래서 어느 대왕적에 몇호에 문장이라는걸 주워가지고 중시조가 됐드라. 이래 낙향해 가지고 파령산 산주가 되고 그래서 중시조로서 덧질 신씨가 이루어졌고 덧질 신씨에 중시조로서 문장이 낮다는 얘기가 되겠읍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파령산 산주는 그 자손들이 계속 계승해 가지고 지금까지 덧질 신씨네 문중의 산으로서 그 파령산이 유명하죠. 그래서 파령산은 그 명기가 참 좋다는 얘기가 있어요.한국구비문학대계 3-2 본문 XML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