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제목
처용암과 임진왜란
자료분류
설화
조사자
정상박, 김현수
조사장소
경상남도 울산시 신정1동
조사일시
1984.08.10
제보자
이유수
조사지역
경상남도

음성자료


구연상황

제보자가 계속하여 너무 많은 설화를 구술한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처용에 관한 구전이 있는가 하여 “삼국유사의 기록에 없는 처용 설화를 얘기해 주십시오.”라고 청했더니 이 설화를 구술했다. 처용암을 이 지방사람들은 용과 관계 있는 신령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채록내용

조사지역: 경상남도/울산시
    분류코드: [울산시 설화 40] 
    테이프번호: T. 울산 2 뒤
    조사장소: 신정 1동
    조사일: 1984. 8. 10.
    조사자: 정상박, 김현수
    제보자: 이유수(남, 59세)
    처용암과 임진왜란
    * 제보자가 계속하여 너무 많은 설화를 구술한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처용에 관한 구전이 있는가 하여 “삼국유사의 기록에 없는 처용 설화를 얘기해 주십시오.”라고 청했더니 이 설화를 구술했다. 처용암을 이 지방사람들은 용과 관계 있는 신령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울산에 개운포(開雲浦)에는 처용암(處容岩)이 있읍니다. 처용암을, 옛날 기록에 보면, 좀 달리 대용암(大龍岩)이라고도 해 왔읍니다. 여게 하나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의 일이었읍니다. 임진왜란 때 그야말로 울산에는 그 좌병영이 있아가지고 좌병사(左兵使)가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부산성(釜山城)에 왜군이 상륙을 했다 카는 얘기를 듣고 좌병사는 울산군수(蔚山郡守)가 거느리는 군병까지도 이끌고 동래성(東萊城)에로 향해가 갔읍니다.
갔는데 동래성은 버러(벌써) 포위가 돼 있고 부산성은 함락이 되고 이것을 본 좌병사 이각(李珏)이라 쿠는 사람은 거게서 달아났읍니다. 달아나서 언양(彦陽)에 와가지고 머물고 있다가 그 길로 병영성(兵營城)에 되돌아와서 달아나고 없었는데, 이렇게 해서 관군은 달아났읍니다. 달아났는데 지방을 지키고 있던 울산사람들은 스스로 일어나서 의병을 일으켰읍니다. 그래서 한, 한 달이 채 못 돼가지고 산곡간(山谷間)에서 의병이 구름같이 몰려 왔는데 그때 한 삼천 명이 됐다고 합니다. 그때 울산에 있는 김태허(金太處)라 하는 사람을 가군수(假郡守)로 뽑아가지고 그 산하에서 부대를 편성해가지고 울산을 지키고 있었는데, 하로는, 
“기장(機張) 쪽에서 왜적들이 배를 타고 구름같이 몰려 온다.”
이렇게 전갈이 왔읍니다. 그래서 과연 척후병이 보니까 그렇게 몰려 오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울산에 김태허 가군수 이하 의병들은 뜻을 모아 목욕제계를 하고 그 대용암에서 제사를 지내고 용신에게 바람을 빌었읍니다. 바람을 빌기를 적벽대전(赤壁大戰) 때 제갈양(諸葛亮)이 동짓달 열아흐레날에 남풍을 빌듯이 역시 태풍을 빌었읍니다. 그래 했는데 그때가 팔월 스무사흘날인가 그래 됐는데 마침 왜적이 개운포로 몰펴 올 때 일진의 바람이 몰아쳐가지고 왜선 열 세 척을 깨뜨리고 침몰을 시키고 우리 의병들이 대승을 했다, 이렇게 전해 오고 있읍니다.
그래서 이 처용이 나왔다 쿠는 처용암이 대용암이 되고, 이 대용암은 울산을 지키고 또 영검이 있는 그런 바위가 돼 놔서 그 후 울산 사람들은 풍어를 위해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때로는 답답을 때도 거어 가서 제사를 지내고 그렇게 했다고 전해 오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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