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제목
허초당의 임진란 예견
자료분류
설화
조사자
김선풍, 김기설, 권순능
조사장소
강원도 양양군 서면
조사일시
1981.09.06
제보자
김남수
조사지역
강원도

구연상황

제보자 일행은 부부 동반하여 여행을 다녔는데 부인들만 서면 오색리 집으로 보내고 조사자와 같이 여관에서 녹음 했다. 제보자는 피곤할텐데도 얘기에 적극적이었다. 조사자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얘기를 채록했다. 김효신 제보자의 얘기가 끝나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보자가 이야기를 이어서 들려 주었다.

채록내용

조사지역: 강원도/속초시·양양군/서면
    분류코드: [서면 설화 1] 
    테이프번호: 서면 9 앞
    조사장소: 오색 1 리
    조사일: 1981.9.6.
    조사자: 김선풍, 김기설, 권순능
    제보자: 김남수(남, 82세)
    허초당의 임진란 예견
    *제보자 일행은 부부 동반하여 여행을 다녔는데 부인들만 서면 오색리 집으로 보내고 조사자와 같이 여관에서 녹음 했다. 제보자는 피곤할텐데도 얘기에 적극적이었다. 조사자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얘기를 채록했다. 김효신 제보자의 얘기가 끝나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보자가 이야기를 이어서 들려 주었다.*

허초당(許草堂), 강릉에 허초당이 승(성)이 허간데(허가인데) 이름이 초당이구. 그런데 짚신을 맹글어(만들어) 파는데, 참, 남이 신던 신을 다시 수리해 준단 말이야. 그래 때 바르니라고(끼니를 이을려고) 그렇게 하기를 한 칠십 먹을 때까지 그러니까, 그때 신을 뭐로 짓냐면 소가죽으로 짓거든. 그러니 거게 마른 소가죽을 늘장 다루어 두 번 백장이야. [조사자: 두 벌?] [제보자: 백정은 소를 잡잖우.] 그래 마른 소가죽을 가지고서 평생을 살으니까 그게 두 벌 백정이지, 두 벌 백정. 죽은 쇠가죽을 가지고 다루니 두 벌 백정이지, 천상 천민이거든. 그런 걸 하니 천민이지, 백정보다 더 낮어. 그래서 한 칠십 먹을 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밖으로 임진병란 난리가 나겠거든. 그때 강릉에 김 정승이 있었어. 그 전에는 김 정승은 손자 요크만 아들이래두, 
“허초쟁이.”
라고 이래지 뭐, 영감이란 소리도 없었거든. 쌍놈이니까, 그늠은 대감의 손자니까, 하루는 앞으로 난리가 오겠으니 이걸 방침을 할 연구로다 김 정승을 찾아갔거든. 노 대감을 떡 찾아가서 마당에 가서 그전엔, 
“대감님 계십니까?”
이라고 마당에 가서 굴복을 하는데 그날 아침에는, 
“아무개 집에 있는가?”
이렇게 부르거던. 연령은 비등하니까네, 서로 한 칠십씩 됐으니까, 부르니 그 아들과 손자가 내다 보니 기가 맥혀. 아니 돌백정 쌍놈이 와서 즈(자기) 할아버지 이름을, 
“아무개 있는가?”
이렇게 부르거던. 아니 아들이 내려다보고 호령을 하니, 
“이놈의 쌍놈이 어디 와서 아, 마당에 와서 할아버지 존함을 부르느냐?”
이래니까, 그래 그 늙은이는 그래도 대인이고, 아는 지식이 있는 분이야, 아, 아들을 야단해. “그 사람이 온(오늘) 아침에 와서 내 이름을 부를 때 그만한 일이 있어 부를 끼다. 그러니 너 그 냥반 모셔 들여라.”
아버님 그러니 뭐 꼼짝할 수 없지.
“들어 오시겨우.”
그래 들어왔단 말이야.
“앞으로 몇 해 안 남았어. 임자병란 난리가 날꺼야. 나는데 나를 자네가 서울가 얘기해서, 서울 전하께 얘기해서 날 써 줄 수가 있는가?”
이래 물으니까, 
“나 자네가 지방 천인인 줄은 세상이 아는데 자넬 어떻게 써 주겠나.”
“그래 나도 그런 줄 알아. 내가 앞으로 아무 달, 아무 날, 아무 시에 내가 죽어 운명할테니 날 써 준다면 내가 그때까지 살겠는데, 날 써주지 못한다니 내가 죽을테니 우리 집에도 아들 손자가 많아. 그리니 우리 집에 와 가지고 그날 아침 일찌감치 자네가 우리 집 방에 들어오면 내가 운명할께야. 운명할테니, 내가 벽조목으로 칼을 하나 깎아서 놔둔 게 있어. 있으니 내가 죽거든 큰 갓을 씌워서 염을 하지 말고 큰 옷 입혀서 벽조목을 오른 손에다 집키고, 아들 손자 울지도 못하게 하고 자네 손으로 염을 해서 짊어지고 내 손자 몇 살 먹은 거, 자네 손자 지금 몇 살 먹은 거 그거밖에 살 사람이 없어. 그래니까 날 짊어지고 강릉 팔송정이 저 아래 내려가며, [조사자: 그래 벽조목이 뭐예요?] [제보자: 벽조목이 벼락 맞은 대추나무지.] 그래서 벽조목으로 장근 만든 것이 그걸 날 손에 쥐켜 가지고 염을 하지 말구 큰 옷 입히고 큰 갓 씨켜서 팔송정 나가서 이렇게 구뎅이(구덩이)를 질게 파지 말고 무수(무우) 구뎅이처럼 깊이 한질되게 파서, 파군(파고는) 날 소련히 세워놓고 위에다가 무슨 나무데기 얼적대 같은 거를 찍어다가 발기를 깔고 그래곤 흙으로 묻곤 집을 하나 짓구 자네가 내 손주 내 묘 앞에 아무개하고 자네 그 몇 살 먹은 아무하고, 그 둘을 데리고 내 묘 앞에 시묘를 살면 알 도리가 있을 껠세.”
그래. 그래 그날 죽는다는 날 아침에 일찌감치 채려 가지고 건너갔단 말이야. 그래서 이 양반이 구들에 착 들어가 앉으니 숨이 사르르 그만 넘어가. 그래 아들, 며느리 뭐, 손자가 울라 하니, 
“너 꼼짝 말고 울지 마라.”
그래 인제 못하게 하구는, 
“너 그 이 사람의 그 큰 옷과 그 갓과 벽조목을 깎아서 장검을 깎아 놓은 기 있다니, [제보자: 장검은 칼이거든.] 칼을 깎아 놓은 기 있다니 그걸 내오너라.”
그래 그걸 내오니 장검을 오른 손에다 쥐키고, 그래고 이제 도포를 입히고, 갓을 씌키고 이래서 며느리 손자 싹 손 못대게시리 하고, 영감이 짊어지고, 아, 짊어지고 가는 게 기가 맥히지. 망구(평생)에 큰 나무장이 하나 안 들어 봤을 텐데. 짊어지고 팔송정에 나갔단 말이야. 나가서 구뎅이 짚히이래 둘러파고는 거다(거기에다) 들여 세워놓고는 위에다 낭구(나무)를 꼭 깔고는 이제 흙을 모아서 봉분을 만들고, 그 앞에다 초막을 하나 젯단 말이야. 짓구는 자기 손자 하나하구, 허초당 손자 하나하구, 그래 데리고 그 앞에 가서 시묠(시묘를) 살었어.
시묘를 사는데 아, 하루는 있다니 바달 내다보니 바다에 새까맣게 배가 떠들어와. 배가 떠들어오는데, 그 일본서 난리를 꾸메 가지고 들어오는 거라. 들어오니 난데 없는 바람이 돌개바람이 넨장 일어나더니 그 저 강태공 선상과 한 가지지. 돌개바람이 쏵 일어나더니 아, 팔송정 소낭기(소나무) 아름드리가 거기 둘러빠지고, 둘러빠지고, 둘러빠져 가져 이놈의 소낭기 거자빠지지도 안하고 아, 바람이 이렇게 꾸쭉 솟아 나간단 말이야. 바다로 나가더니 바다에 가더니 꾸뻑하더니 배를 뒤잡아 엎고 꾸뻑하더니 배를 뒤잡아 엎고, 그러니 군사 수 만명이 죽었거든, 하루 식전에. [조사자: 소나무가?] [제보자: 그렇지.] 그래니 허초당의 영혼이 그렇게 했지.
뭔 놈의 바람이 불어서 그런 소낭기(소나무가) 둘러 빠져서 그냥 공중에 나갈 수가 있나. 허초당의 죽은 영혼이 그저 조활(조화를) 부려서 그렇지. 그래서 수 만 명 잡고, 그렇게 허초당을 놔뒀으면, 써 줬으면 그때 하루 식전에 풍금이야. 하루 식전에 아주 일본 사람들을 전멸시키구서 그만 평난이 될 낀데. 허초당 그래 써주지 못하니 그래 죽었지. 그래 허초당이 죽은 지후 정승 유지가 내려왔어. 난리 평난되고, 그 인제 김정승은 그때 그 나이에 살았거든. 그 손자도 살고 이러니까, 그래서 그 연유를 꾸메서 상소하니까 죽은 후에 정승 유지가 내려. 그래 죽은 정승이야. 그래, 
“허정승 없으면 나라 봉양 못하느냐?”
옛날 일에 그런 말이 있거든. 그러니 그기 그때 난 말이여. [조사자: 그기 무슨 말이예요?] ‘허정승이 없으면 나라 봉양 못하랴‘는 말이, 허초당이 죽어도 그 뒤에 인재가 또, 나 가지고 조선을 살려나갔다니 그 얘기지. 그건 허초당을 그때 놔뒀으면 하루 식전에 다 쓰고 말았지. 그 다음에 광릉 저 전라도에서 올라온 총각 아, 데꺼머리 총각아가, 그놈아 이름을 내가 몰라. 그놈아 그렇게 재주가 좋은데, 그 사람을 놔뒀으면 석 달만이면 난리가 다 평정돼. [조사자: 그 사람 이름 뭐예요?] 그 사람 이름은 몰라, 떠꺼머리 총각아란 소리만 들었지. 그 사람도 죽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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