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상황
이야기는 계속하여 지관의 이야기로 이어져 갔다. 지관의 영향이 그만큼 컸었다는 반증이 되는 이야기라 하겠다. 이야기하는 동안,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세종대왕이라서 그런지 매우 심리적인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일반적인 서민의 산소 이야기가 아니라 일국의 왕, 그것도 명주(名主)로 존경받고 있는 세종대왕이라서 그런가? 어쨌든 신중히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 특히 인상 깊었다.
채록내용
조사지역: 경기도/강화군/화도면 분류코드: [화도면 설화 21] 테이프번호: T. 화도 6 앞 조사장소: 상방 2리 고창 조사일: 1981. 7. 17. 조사자: 성기열, 정기호 제보자: 신석하(남, 46세) 남의 자리 빼앗은 영릉(英陵) * 이야기는 계속하여 지관의 이야기로 이어져 갔다. 지관의 영향이 그만큼 컸었다는 반증이 되는 이야기라 하겠다. 이야기하는 동안,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세종대왕이라서 그런지 매우 심리적인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일반적인 서민의 산소 이야기가 아니라 일국의 왕, 그것도 명주(名主)로 존경받고 있는 세종대왕이라서 그런가? 어쨌든 신중히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 특히 인상 깊었다.* 그러니까 지금 영릉, 저기 지금 세종대왕릉, 세종대왕릉이 원래 남이(의) 산부터예요. [청중: 남이, 남이산부터라요?] 예, 남이 산수를 쓴 거여요. 게 인제 세종대왕이 돌아가신 다음에 대한민, 그러니까 그 전엔 조선이지, 지금 조선에서 아주 으뜸 명지관, 풍수설에 아주 으뜸 명지관을 불러 가지구 팔도강산을 다 돌아다니는데. 그러니깐은 그전에. 그전에 그 다른 사람이 산수 썼던 자리, 지금 영릉 자리 그 산수 터에 인젠 다른 사람이 산수를 쓸 적에, 그애 지관이 하는 소리가, “이 산수를 쓰구 잘 되면은 잘 된다구 해서 사당집을 짓지 말아라.” 말야. “아, 그럼 그래야 한다.” 구 말야. 근데, 산수를 쓰구 잘 되면 대가 잘리니깐 말이지. 아버지 돌아가시구, 아니, 할아버지 돌아가시구 대가 갈리니까 부자루 잘 살구 그러는데, 그 산소에 잘 사니깐은 그 지관이 그 전에 핸 얘기는 잊어졌을 꺼 아냐? 그러니깐은 중간에 사당을 잘 졌다 이거야. 잘 져 놨는데, 그리구선 그 후엔 인제 세종대왕께서 인제 돌아가신 다음에 그 명지관을 불러 가지구선 인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인제 그 산소 터를 인제 그래 누 능까시를 보는 거니까, 능뜰을 보는 것이니까. 인제 보는데, 참 그 지금의 영릉 자리, 거기쯤 오니깐은 별안간에 그냥 소나기가 쏟아지거든. 그러니깐은 이 산수, 풍수설에 의한 이 유명한 사람이 어디루 피할, 피신할 수가 없으니깐은 그 사당집 처마 모퉁이에 가서 인제 비를 거세는 거야. 거기서 이렇게 보면서 보니깐은 그 건네(건너) 산수가 하나 있는데 명당터거든.‘아이쿠, 팔도강산 다 돌아다녀 봤어두 저 산수투(터) 같은 데가 없다.’말야. “에이, 저 산수 누구네 산순지 파 내뻘이고 저기다 써야겠다.” 그래가지구 그 산수를 파 내구선은 세종대왕의 구(柩)를 여기다가 모셔가지구선 지금 영릉이 됐는데요. 그래 가지구선은 그 영릉 자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산수 터는 좋지만은 남의 산수를 파 내구 썼기 때문에 무, 저, 거시기 문종이 몸이 약해 가지구 일찍 가구, 단종 어렸을 적에 세조가, 삼춘이 조카를 몰아내게끔 되는 이런 반역적 모의루다 나라를 다시 세우게끔 돼 있대는 거지. 그러니깐 산수들을 좋은 데를 내가 또 뺏어서 쓰두라두 가정 풍파는 일어난다는 거지. 그러기 때문에 그째 그 먼젓번에 산수 쓰게 할 적에 얘기해 준 그 지관이 풍수설에는 유명한 사람이야. 사당집을 안 졌으면 비 왔어두 그냥 내리달갔으면 그 산소를 보지 않았을 거거든. 그래 사당집 짓는 바람에 거기서 비 거세는 바람에 그 산수 보구 산수를 뺏긴 거지. [웃음] 그래서 그 영릉 자리가 거기 그 여주, 여주지. [청중: 남의 자리 뺏어두 저, 저 자기네한테두 저 이해가 돌아오나요?] 예, 산수는 인저 예전에 풍수설 말이 있으면은 인제 같은 명당 터락두 치수, 치수(治水)가 인제 깊이 파야 하는 데가 있고 얕이 파야 하는 터가 있었어.한국구비문학대계 1-7 본문 XML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