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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상황
조사자가 집안에 무강왕과 관련되는 이야기가 전하느냐고 묻자, 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구연했다. 이야기 구연에 이어서, 한씨 성이 삼한시대에 마한의 갑족으로써 왕족이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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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번호 및 파일명] 1-06_13_FOT_20090107_NKS_HHC_0010 [제목] 선화공주와 미륵사 [구연정보] 조사일시 : 2009년 1월 7일 조사장소 :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도동리 245번지 중앙당한약방 제보자 : 한희천 청중 : 0인 조사자 : 나경수, 이윤선, 송기태, 백계현 [구연상황] 조사자가 집안에 무강왕과 관련되는 이야기가 전하느냐고 묻자, 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구연했다. 이야기 구연에 이어서, 한씨 성이 삼한시대에 마한의 갑족으로써 왕족이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줄거리] 신라가 백제를 자주 침략했다. 백제에서 화해책으로 신라의 공주를 며느리로 맞이했다. 백제의 무강왕과 신라의 선화공주가 그 주인공이다. 무강왕과 선화공주 사이에서 딸을 낳아서 일본 태자에게 시집을 보냈다. 왕실간에 결혼을 했지만, 신라에서 다시 침략했다. 백제에서 일본으로 연락을 취해 구원군을 요청했다. 일본의 구원군이 태풍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결국 백제가 전쟁에 패했다. 무강왕과 선화공주가 결혼한 후, 선화공주의 요청에 의해 미륵을 모시는 미륵사를 지었다. 평화와 화해를 위해 미륵사를 지었지만, 결국 신라가 침략을 하고, 전쟁에서 패했다. [본문] 거그 저, 공주, 선화공주라고 허죠. 그 무강왕 부인이고. 이렇게 해서 인자, 거그도 백제 그, 온조왕인가 뭐 딸허고 같이 결혼을 헐락 했는디, 사실은 그 결혼 못 했어요. 저그 저, 사랑을 줘갖고 신라하고 허게 되믄은, 신라가 차꼬 백제를 쳐들어오니까. ‘쳐들어오니까 우리가 인연을 맺어지믄은 서로 안 차지허고, 서로 화해허고 이러고 할 것 아니냐. 처가 동네고 그러기 때문에. 딸 동네를 쳐들어오믄 쓸 것이냐. 안 쳐들어오제.’ 그런 거시기로 해서, 연유로 해서, 고리 장개 가서 이 공주허고 결혼을 했어 무강왕이. 그래서 했는디, 그, 인자, 거그서 해가지고 우리가 왕궁을 맨들아. 그 왕궁터거든요. 맨들라도 주추까지 다 맨들았는디 결국에……. 그래갖고 인자 딸을 낳어 거그서. 그 속에서 첫 딸을 낳어. 무강왕이 선화공주허고. 딸을 낳아가지고는 인자 일본허고 차꼬 쌈을 했어. 그러믄 신라하고 쌈허게 도와달라 해갖고 일본 태자허고 결혼을 시켰어. 태자. 일본 태자하고 왕 아들허고 결혼을 시켰는디, 신라가 그래도 쳐들어오니까 ‘안 되겄다.’ 그래갖고 일본으로 연락을 허니까, 거그서도 군사를, 여그 응원 해준다고 인자, 싣고 배로 인자, 건네오는디, 중간에 온게 바람이 어떻게 태풍이 불어가지고 오들 못허고, 도로 마래매기 도로 뒷걸음 해부러갖고 해갖고 결국에는 져버렸어요. 그랬을때게 결혼해가지고 막 선화공주가, "나는 경주니까, 경주가 신라고 경준디, 우리는 불법을 거시기 해서 사람을 화해시키고 있고, 모으고 그러니까, 미륵사, 미륵님을 모십시다.” 그래갖고 거, 모신 것이 거, 미륵사지가 그때, 그 무강왕의, 그 선화공주 말을 들어가지고, 부군이 거기에 응해 줘가지고 거그다 불법으로 해서 미륵사지를 모시고. 근게 산도 미륵산이고 미륵사지여. 그래가지고 전부 다 인자, 사람들 운집해서 통합해서, 인자 거시기 헐라고. 나라를 세우고, 인자 건국 헐라고 생각했는디, 신라가 쳐들어와가지고 결국에 져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