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자료
구연상황
익산 웅포 금강변에 위치한 숭림사는 익산 북부지역의 고찰이다. 숭림사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주지인 지광 스님을 만나려고 연락을 했다. 장맛비 때문에 함라산 토사가 밀려내려 와 절을 임시 복구한 상태인데다 백중불공과 템플스테이 등 절에 여러 가지 일이 많아서 연락 이 된 뒤에도 며칠을 더 기다렸다가 주지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25년간 숭림사 주지를 맡아온 지광 스님은 조사 취지를 이해하고 숭림사에 얽힌 이야기를 구연해 주었다. 제보자가 앞의 이야기에 이어서 충목왕비 꿈에 현몽한 숭림사 이야기를 계속했다.
채록내용
우리 지금 내려오는 구전으로 보면 이것이 있어요. 고려 충목왕 원년 1345년에 충목왕의 왕비가 등창이, 옛날에 등창 나 가지고. 저기 오대산에 가면은 지금,
강원도 오대산 가면은 상원사라고 있잖이요. 오대산 상원사. 가믄 문수보살님이 계세요. 문수보살. 그 문수보살이 입상인데 거기에 지금
그 복장 속에서 피고름 배인 적삼이 뉴스도 나오고 이렇게 복식 연구의 상당히 중요헌 자료가 된다고 혀 가지고 그런 피고름 묻은 옷이 있다고 허는데
그게 바로 뭐냐믄 왕비가 등창이 나 가지고 그 옛날에는 항생제가 없으니까 이게 인자 공곳이 나거나 등창이 나믄 죽었어요. 그때는 의술이 발달허지도 않고.
근디 인자 그 얘기허고 이게 비슷헌 얘깁니다. 숭림사 내려오는 얘기허고. 거기서 거기는 옷도 발견되아 가지고 그 의복도 문화재로 지정되고
복식 연구에 상당히 좀 많이 연구 자료가 된다고 허는데 거기에 보니까 피하고 고름이 막 덕지덕지 얽힌 거.
그때 뭐냐믄 왕비가 거기서 공주가 말허자믄 등창 그 병이 걸려 가지고 죽을병이 걸려 가지고 인자 뭐 운명이, 뭐라고 허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꿈에 선몽을 해 가지고 문수보살 이끄신 말허자믄 오대산에 와 가지고 기도해 가지고 문수동자의 가피로 병이 나았다고 허잖어요.
그래 가지고 그 공덕으로 상원암에 막 시주도 많이 허시고 거기 문수보살 상도 만들어서 이렇게 봉안했다 혀 가지고 그 복, 복장. 문수보살 배, 뱃속으다
그 의복을 걍 빨지도 않고 거기다 기념비적으로 혀 가지고 봉안해 넣었다는 그런 기록까지 다 나왔으니까 그건 뭐 틀림없는 사실인데
옛날에는 인자 복장뿐 아니라 미륵사지 사리함도 마찬가지지만 그게 뭐 사택 왕비 써져 있잖어요.
그와 똑같이 인자 복장을 만든다거나 부처님을 조성헌다거나 절을 지었다거나 그러믄 그런 기록을 남기는 것이 있어요.
근디 우리는 월정사 상원사같이 기록은 없어요. 그래 가지고 왕비가 등창이 나 가지고 사경을 헤매는데
꿈에 중국과 가까운 숭림사의 모습이 인제 꿈에 재현이 되는 거에요. 그래 물어물어 가지 고 아까 말한 숭산의 숭 자, 소림의 림 자.
소위 말혀서 중국과 가까이 위치헌 절. 꿈에 현몽헌 사찰을 갖다가 부하들, 신하들한테 물어 가지고 인자 아마 수소문했겄지요.
그래 가지고 여기 숭림사 여기가 맞다 혀 가지고 당신이 직접 와 가지고 꿈에 선몽헌 절이 맞으니까 여기서 삼칠기도에 들어가요. 삼칠기도.
이십일 일간 기도를 해 가지고 꿈에 선몽헌 절에 와서 기도해서 그 상처가 나섰는데 상처가 나은 것도 또 누가 살을 붙였드라고.
뭐 거시기 새가 나와 가지고 쪼아 가지고 이렇게 곪아진 데를 막 이렇게 해 가지고 상처를 아물게 해서 병이 나았다 해 가지고
상당히 인자 그 충목왕이 여기를 왕실의 원찰을 삼어 가지고 스님들 사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향화가 끊이지 않도록 혔다. 부처님 올리는 향.
또 인자 뭐 스님들이 기거하는 데 필요헌 거 뭐 음식이라든가 쌀 같은 거. 이런 것을 혔다고. 그런 기록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