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제목
우륵선생이야기
자료분류
기타
조사자
김기현, 박지애, 손유진, 배정건, 서윤이
조사장소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조사일시
2012. 7. 3(화)
제보자
이용호
조사지역
경상북도

음성자료


구연상황

앞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제보자가 먼저 우륵선생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냐는 질문으로 구연을 시작하였다. 고령의 역사와 관련하여 대가야와
신라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구연을 계속하였다.

채록내용

우륵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세요? 우륵선생?
        그냥 그 역사의 기록은 우륵선생이 뭐 가야가,
        대가야 어느 왕이 뭐 음탕해서 음탕해서,
        혹은 또 자기의 그 음악세계를 펼칠 수 있는 그런 힘이 못되서,
        신라로 망명했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신라의 입장으로 봐서는 분명히 그 망명이라는 말을 쓸 수가 있다 싶은데,
        인자 우리 가야로 봤을때 망명이라는 용어는 맞지 않다.
        그런 듣기는 말하면 그래요.
        아 진흥왕이 그 부근에 와서 가야에서 그렇게 그 가야금을 잘 타는 사람이 있단다.
        그 사람을 초대해서 우리가 함 들어보자.
        그래서 가가지고 납치당했다 이런 말이 하나라 있고요.
        두 번째 또 하나는 그 우륵선생이 도망을 가는데,
        우륵선생 결혼했어요? 안했어요? 모르죠? 하하.
        말은 그래요 우륵선생이 제자 이문을 데리고 신라로 망명할 때,
        마누라까지 세 명이 도망을 갔는데 국경지역에서 도망을 가다가,
        이쪽에 병사들이 쏜 화살에 아내가 맞아 죽었다.
        그래서 두 사람만 넘어갔다 하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은 마누라 두고 도망갈 사람 있겠습니까?
        그 이야기가 맞을 거 같애요.
        고게 인자 망명이라는 거고,
        또하나는 어떤 게 있나 하면 대가야가 그 신라한테 멸망한 게 오백 육십 일년에 망했는데,
        그때 기습적으로 망했거든.
        그 이야기 뒤끝이 우륵선생이 가야의 입장으로 봐서는
        악사로서 최고의 신분을 신분을 보장을 받고 있던 사람이 뒤
        그 자기의 음악세계 뭐 왕이 좀 음탕하다고 그래서 신라로 망명을 어떤 아무 근거가 없어.
        그건 신라가 역사를 쓸 때 어떻게 썼을까 인자 그걸 생각을 해봤는데,
        망해서 도망가다가 잡혀서 갔는데 신라가 역사를 쓰면서 대가야를 비하하기 때문에,
        비하하는 뜻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마무리를 지은 것이 아닌가?
        요게 우리가 가끔 하는 이얘기에요.
        이얘기니까 통 뭐 야사 이야기래가서 재미는 없겠지마는,
        우리는 보통 그 우륵선생 이야기를 그렇게 이제 뭐 근거가 뭐 있는 거는 아닌데.
        우륵선생이 지금까지 확실히 어디에 어디 사람이라는 기록은 없어.
        다만 성결현에 살았다 성결현이 어딘데 아무도 몰라.
        그런데 택도 없는 의령군 부림면에서 우리동네 살았다고,
        그담에 또 이 가조가 가족도 또 우리 꺼다,
        대구 불로동에서 그 우리 꺼다 우리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전에 세미나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왔냐면 나왔냐 하면,
        그 당시 천 오백 오백년 대 겉으면 약 천 오백년 전에
        그 그만큼 음악에 조예를 가진 사람이 과연 저 시골구석에서 살았겠는가?
        아마도 도읍지 부근에 있음으로 해서 그런 데 접할 수가 있었고,
        또 옛날에는 그 그런 예인들이 전부다 학자들이잖아.
        공부를 많이 하신 선비들이 주로 거문고 가야금을 탔거든
        그런거 보면 분명히 고령 가까운 데 있었을 것이다.
        그게 어디냐 성산쯤이 아닐까 자 그렇게 추정을 해.
        그이 어떤 분들은 그 박돈오회장이 있는 그 동네 도진이다 하고,
        그런 이야기도 하는데 우리가 볼 때는 그런 게 타당성이 있는 것 같다.
        이분들은 학자들이 오셔가지고 택도 없는 소리다카는데,
        우리가 들을 때는 그분들이 하는 소리가 택도 아이든데.
        현실에 맞, 맞게 조명을 시키는 게 맞는 게,
        이게 또 몇 백 년 흐르면은 어느 정도 역사가 완결이 되야 되는데.
        지금같이 오백년 후에도 이렇게 흘러간다면은 큰일이다 싶은 생각이 늘 들어서.
        우리는 보통 설명을 할 때 보통 그렇게 합니다.
        가능하면 고령 쪽 대가야 쪽 사람이다 라고 되는 게 안 맞겠나 싶은데.
        정확한 얘기가 없는 거 같애요.
    혹시 뭐 물을 거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