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내용
「병」 동남아세아에서…―만九쳔쳑 「히말라야」산이 서편으로 기우러져 인도반도가 남으로 려질렀고 동으로는 서장 고원지대가 지나의 셔변과 상졉하고 서장으로부터 시작하야 서평양으로 달려 려와 「자바」를 대하고 머져진 반도가 즉 동남아셰아이고 서장 티벹 버마 타일란 등 국들을 서편에 고 안선을 라 길게 노인 이 즉 월남이고 「라오스」 「보디아」 소국들로 중간에 간격을 두고 남북으로 갈라진 것이 곳 남월이고 북월이며 쳔리장강이 탄도 삼림지대를 코 려와 항구가 열닌 강구가 즉 졔七함대가 대기하고 있는 「사이공」입니다. 중교는 졍신을 지하니 월남이 북으로 려오는 유교를 받아 한문을 통용하고 서로 넘어오는 불교를 받아 불교 쳔지로 몇 년인지 몇 쳔년인지를 려오다가 영·불의 영지가 되면서 구미의 민주주의와 풍속습관을 흡수왔고 북으로는 중원대륙을 밀졉하야 광동인민의 졍치졔도와 활방식을 흉상하여 오다가 중국이 공산졍권이 수립되며 중공이 붉은 손으로 북월을 긁어쥐게 되였다. 월남이 「프랑스」의 통치를 버서나려고 八년간 혈젼고투할 에는 북월의 주석 호지명과 남월대통령 「고·딘·디엠」과는 물론 극진한 동지로서 독립젼을 지한 영웅들이였지만 급기야 졍부를 수립할 는 「호지명」은 공산으로 「고·딘·디엠」은 민주로 갈나지기 대만―대륙 남한―북한 동독―서독과 동일한 형편이였다. 알남왕 대보황졔는 융히졔쳐럼 「프랑스」가 광고판으로 셰워두었던 것이니 졍쳬변동에 라 폐위되였고 「고·딘·디엠」은 八년 젼공이 있고 월남의 三한갑족이라 민중의 투표로 대통령이 되었다. 「급즉 하고 완즉진」―급하게 되면 물러가고 심평이 피이면 진출하다는 말은 아라사의 독작을 의미한 것인데 과연 쳘권상 「스탈린」은 젼이 급할 는 우리 소련은 국졔 공산주의는 포기하노라 성명하고는 연합군과 합력하여 독일을 방어한 후에는 숨을 돌린지라. 셰게 도쳐에 국졔 공산을 활동하야 중원대륙에 셰력을 확장하였다. 에 미국은 금젼 고을 여러노코 군력을 파송하야 공산의 분화구를 트러막다가 동남아셰아에서 「고·딘·디엠」 졍권이 북월과 상대된 기미를 간파하고는 원조를 자쳥하였다. 「고·딘·디엠」은 쳔주교 신자로 독신이며 「고·딘·칸」은 「후에」 교회의 주교며 「고·딘·누」는 졍탐부장이며 「고·딘·루엔」은 영국 주 대사이며 졔수인 담 「고·딘·누」 여중호걸이였다. 외교졍의 무불간섭이고 심지여 수틀리면 부통령 완옥서 귀를 손수 갈겼다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민주공화졍부라 성립하고는 왕년 장석 모양으로 가족 졍부로 변하여 국사를 젼횡하니 「후에」시의 불교도가 八十五「퍼센트」가 되는데 쳔주교 「고·딘·디엠」의 가족 졍부와 불교도 민중 사이에 투이 이러나 광덕대사로부터 시작하야 六 불교수도사가 「사이공」 녜거리에서 「소린」 목욕을 하고 안언이 소사하는 광경이 이러나서 세게 공론이 「고·딘·디엠」 졍부의 학졍을 논박하였다. 에 미국은 종교투에 중립을 선포지만 민심을 상실한 「고·딘·디엠」 권하야 민권을 확보하고 공산방어를 주장하였지만 는 이미 느졌고 미국으로 붙어 잠입한 「두옹·반·민」 장군이 병변을 이르키어 「고·딘·디엠」은 죽었고 「두옹·반·민」 장군이 집졍하야는 공산·민주나 친독·친미를 민의에 조자 결졍하려고 하니 이는 이미 졍돈된 나라에서 말이지 강국들이 드러서 상지하고 있는 판에서는 불가능한 사셰라. 「구엔·칸」 장군이 다시 병력을 경하고 「두옹·반·민」 장군을 집어 치우고 집졍하기 마치 박졍희 장군의 젹을 복습한 것이였다. 그는 분명하게 불 「프랑스」 친미 「프랑스」 공산토벌의 기치를 걸고 「프랑스」 영사관을 요란하였고 「프랑스」는 「구엔·칸」 장군을 암살하려 하다가 사젼에 발각되였고 젼달에도 인민의 반동이 이러나 「프랑스」 영사관을 파괴하였고 북벌한다고 선언하며 미국은 졔七함대를 파송하야 「사이공」항구와 「통킹」만에서 로를 관졔하면서 대기하고 있다. 「드골」 대통령은 다시 동남아셰사로 외교의 수완을 벌렸다. 작년 六월에 미, 소, 영의 금조약이 성립되자 八十여국이 다투어 참가하였는데 「드골」은 三국만이 싸인한 조약은 무효라고 돌니고 나는 마음대로 원자탄을 시험하겠노라 선언하고는 八十년간 「프랑스」의 무진장의 곡간이던 월남에 즉졉 착수하였다. 북월의 호지명을 연결하야 「파리」에 불·월 무역회사를 설립하고 불·월의 국기를 교차 걸고 양국 관리들이 한소리로 불·월 만셰를 합창하였다. 그리고 남월 쳔주교―가족 졍부 「고·딘·디엠」 일판을 충동하야 북월주석 효지명과 비밀약속을 졍하고 미국이 물러갈 는 「프랑스」가 막대한 원조를 주어 민의 안졍을 보장할 것을 약속하고는 「고·딘·디엠」은 밀사가 되여 북월와 요인을 밀통하고 「담·누」를 구·미에 보어 미국이 동남아에서 잘못한다는 것과 월남의 졍을 간섭한다는 것과 는 「흐루시초프」는 모동 보다 믿지 못할 인물이라 등으로 선젼하게 하였다. 이것이 즉 미국을 축출하는 음모이요 월남통일과 동남아 중립졍의 쳣거름이었으니 「프랑스」가 다시 인도차이나에 동임하시는 외교의 나팔 소리였다. (다음호에 계속)
「병」 동남아시아에서… ―1만 9000척 「히말라야」 산이 서편으로 기울어져 인도반도가 남으로 내리질렀고 동으로는 시짱(티베트) 고원 지대가 중국의 서변과 상접하고 시짱으로부터 시작하여 서태평양으로 달려 내려와 「자바」를 대하고 맺어진 반도가 즉 동남아시아이고 시짱(티베트), 버마(미얀마), 타이 등 국(國)들을 서편에 끼고 해안선을 따라 길게 놓인 땅이 즉 월남이고, 「라오스」·「캄보디아」 소국들로 중간에 간격을 두고 남북으로 갈라진 것이 곳 남월이고 또 북월이며, 천리 장강(창장강)이 탄도 삼림지대를 뚫고 내려와 항구가 열린 강구가 즉 제7함대가 대기하고 있는 「사이공」입니다. 종교는 정신을 지배하니 월남이 북으로 내려오는 유교를 받아 한문을 통용하고 서로 넘어오는 불교를 받아 불교 천지로 몇백 년인지 몇천 년인지를 내려오다가 영국·프랑스의 영지가 되면서 구미의 민주주의와 풍속, 습관을 흡수해왔고 북으로는 중원 대륙과 밀접하여 광둥 인민의 정치제도와 생활방식을 흉상하여 오다가 중국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며 중공이 붉은 손으로 북월을 긁어 쥐게 되었다. 월남이 「프랑스」의 통치를 벗어나려고 8년간 혈전고투(血戰苦鬪)할 때에는 북월의 주석 호지명(호찌민)과 남월 대통령 「응오 딘 지엠」과는 물론 극진한 동지로서 독립전쟁을 지배한 영웅들이었지만 급기야 정부를 수립할 때는 「호찌민」은 공산으로, 「응오 딘 지엠」은 민주로 갈라져 대만―대륙·남한―북한·동독―서독과 동일한 형편이었다. 알남왕[월남 왕] 대보(바오다이) 황제는 융희제처럼 「프랑스」가 광고판으로 세워두었던 것이니 정체 변동에 따라 폐위되었고 「응오 딘 지엠」은 8년 전공이 있고 월남의 삼한갑족이라 민중의 투표로 대통령이 되었다. 「급즉 때하고 완즉 진」―급하게 되면 물러가고 심평이 피면 또 진출한다는 말은 러시아의 독작(獨作)을 의미한 것인데 과연 철권 재상 「스탈린」은 전쟁이 급할 때는 우리 소련은 국제 공산주의는 포기하노라 성명하고는 연합군과 합력하여 독일을 방어한 후에는 숨을 돌린지라. 세계 도처에 국제 공산이 활동하여 중원 대륙에 세력을 확장하였다. 때에 미국은 금전 곳간을 열어놓고 군력을 파송하여 공산의 분화구를 틀어막다가 동남아시아에서 「응오 딘 지엠」 정권이 북월과 상대한 기미를 간파하고는 원조를 자청하였다. 「응오 딘 지엠」은 천주교 신자로 독신이며 「응오 딘 칸」은 「후에」 교회의 주교며 「응오 딘 뉴」는 정탐부장이며 「응오 딘 루엔」은 영국 주재 대사이며, 제수인 마담 「응오 딘 뉴」는 여중호걸이었다. 외교·내정의 무불간섭이고 심지어 수틀리면 부통령 완옥서(응우옌 응옥 터) 뺨따귀를 손수 갈겼다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민주 공화정부라 성립하고는 왕년 장개석(장제스) 모양으로 가족 정부로 변하여 국사를 전횡하니 「후에」시의 불교도가 85「퍼센트」가 되는데 천주교 「응오 딘 지엠」의 가족 정부와 불교도 민중 사이에 투쟁이 일어나 틱꽝득 대사로부터 시작하여 6개 불교 수도사가 「사이공」 네거리에서 「가솔린」 목욕을 하고 안언이 소사하는 광경이 일어나서 세계 공론이 「응오 딘 지엠」 정부의 학정을 논박하였다. 때에 미국은 종교 투쟁에 중립을 선포했지만 민심을 상실한 「응오 딘 지엠」 권하의 민권을 확보하고 공산 방어를 주장하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미국으로 붙어 잠입한 「즈엉 반 민」 장군이 병변을 일으키어 「응오 딘 지엠」은 죽었고 「즈엉 반 민」 장군이 집정해서는 공산·민주나 친독·친미를 민의에 좇아 결정하려고 하니 이는 이미 정돈된 나라에서 말이지 강국들이 들어서 상지하고 있는 판에서는 불가능한 사세라. 「응우옌 카인」 장군이 다시 병력을 배경으로 「즈엉 반 민」 장군을 집어치우고 집정하니 마치 박정희 장군의 행적을 복습한 것이었다. 그는 분명하게 배불 「프랑스」, 친미 「프랑스」 공산 토벌의 기치를 내걸고 「프랑스」 영사관을 요란하였고 「프랑스」는 「응우옌 카인」 장군을 암살하려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었다. 전달에도 인민의 반동이 일어나 「프랑스」 영사관을 파괴하였고, 북벌한다고 선언하며 미국은 제7함대를 파송하여 「사이공」 항구와 「통킹」만에서 해로를 관제하면서 대기하고 있다. 「드골」 대통령은 다시 동남아시아로 외교의 수완을 벌렸다. 작년 6월에 미, 소, 영의 금핵조약이 성립되자 80여 국이 다투어 참가하였는데 「드골」은 3국만이 사인한 조약은 무효라고 돌리고 나는 마음대로 원자탄을 시험하겠노라 선언하고는 80년간 「프랑스」의 무진장의 곡간이던 베트남에 직접 착수하였다. 북베트남의 호찌민을 연결하여 「파리」에 프랑스·베트남 무역회사를 설립하고 프랑스·베트남의 국기를 교차해 걸고 양국 관리들이 한소리로 프랑스·베트남 만세를 합창하였다. 그리고 남월 천주교―가족 정부 「응오 딘 지엠」 일판을 충동하여 북베트남 주석 호찌민과 비밀 약속을 정하고 미국이 물러갈 때는 「프랑스」가 막대한 원조를 주어 민생의 안정을 보장할 것을 약속하고는 「응오 딘 지엠」은 밀사가 되어 북베트남과 요인을 밀통하고 「마담 누」를 유럽·미국에 보내어 미국이 동남아에서 잘못한다는 것과 베트남의 내정을 간섭한다는 것과 또는 「흐루쇼프」는 모택동(마오쩌둥)보다 믿지 못할 인물이라는 둥으로 선전하게 하였다. 이것이 즉 미국을 축출하려는 음모요 베트남 통일과 동남아 중립 정책의 첫걸음이었으니, 「프랑스」가 다시 인도차이나에 동임하시는 외교의 나팔 소리였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