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정보

발행호수
국민보 제三千七百五十七호(No. 3757)
발행년도
1965
발행월
05
발행일
19
수록면
2
기사유형
기사

기사내용

군당국 발표에 의하면 五·一六 혁명 직후 최고회의의 공보실장을 지다가 원대복귀하여 육군졍훈학교 부교장직을 맡고 있는 원충연 대령 등이 반국가음모를 하다가 젹발되어 민간인을 포함한 七명이 구속되었다 한다.
고참급 대령들인 이들은 진급에 누락되고 보직이 시원치 않은 데 불평하여 반국가 음모란 어마어마한 죄과를 범다는 것이다.
규모의 크고 작은 것에 차이가 있을  진급에 대한 불평으로 상관에게 대드는 등 하극상의 사례는 쳐음 있는 일은 아니다.
「파티」석상에서 는 젼방단위부대에서 그 밖의 모임에서 등 얼핏 보기엔 대수롭지 않게 밝혀져 있다. 그러나 이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이 줄을 지어 길  사는 심상치 않게 된다.
특히 상명하복, 단결, 복종 등을 명으로 하는 군부에 있어서는 더욱 위험한 풍조로 나타난다.
민기식 젼 육군참모총장이 임기만료 두 달을 앞두고 군복을 벗게 된 여러 원인 중에는 이 진급, 보직쳐리에 대한 불평과 이에 대한 기민있는 처리의 결여에 있다고들 한다.
지난 一월의 장성 진급심사 의 경우 준장이 되는 「케이스」에 추쳔된 대령 수는 三六○여명으로 젼 육군대령의 三분의 一가량이 병을 다느냐 못 다느냐를 판가름었다.
이들은 진급된 지 三년 이상 계급 졍년인 九년급 고참들로 이중 운의 별을  대령은 불과 二十二명이었다. 그러자니 불평이 르기 마련이었다.
졂은 층이 비교젹 많이 기용됨에 라 고참들의 반발이 컸다. 심사위원들은 능력, 경력 외에 출신기별 즉 연조별로 안다는 말이었으나 누락된 사람은 별수 없이 세대교차란 흐름에 밀려나기 마련이었다.
한편 보직에 있어서도 사람은 많고 자리는 넉넉지 못하니 일부 장성급들은 불만을 품었고 대령급 중에도 그러다. 무보직, 무편졔, 상위직, 하위자 보직 등이 그것이다.
육군 최고위층의 대인사이동의 이유의 하나가 된 이용 소장(젼강원도지사)은 五기 동기 중 탈락된 대령들의 예비역 편입, 그리고 본인의 보직이 여의치 않아 공관에서 「컵」을 던지고 험한 말로 민총장에게 대들었다고 젼지고 있다.
이에 앞서도 젼방을 시찰 중인 민대장에게 모포병 대령이 노골젹으로 욕을 보였다.
군 고위 당국자들은 六·二五 동란으로 갑자기 창, 거듭된 숙군에도 기형젹으로 비대지고 五·一六 혁명 후 졍치에 참여다가 원대복귀하는 등 하나의 「비상기」를 거친 군으로는 인사운영에 이만한 진통은 있을 법한 일로 보고 있다.
더우기 이러한 난된 인사를 본 괴도에 올려 놓으려는 방침이 강될  쇄신된 기풍에 맞서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은 당연하다.
김용 총장이 취임할  그는 「군통수권의 확립」을 외치며 군기엄졍을 세웠다. 그런데 취임식 그날밤 육군회관의 「파티」에서 통신감 심상웅 준장이 신·구 총장 앞에서 불평을 토다.
「지난번의 진급은 말이 안된다」고 다. 공교롭게 통신병과 대령 가운데 아무도 준장에 진급이 안되고 보니 감으로서 쳬통이 안 선다는 이야기로 추측된다.
화가 치민 민총장은 「그럼 그만두라」고 호통하자 준장에 진급하 지 一년 三월된 심준장은 「좋습니다. 그만두겠읍니다」고 예비역 편입원을 고 며칠 후 수리되어 그는 군복을 벗었다.
이번 음모를 「대령을 포함한 영관급 장교들이 지난번에 있었던 군 진급에서 누락되거나 현의 보직에 대한 불평불만과 출세욕에 의한 과대망상에서 진 것」이라는 육군의 발표에 를 경우 五·一六 후 장도영계 반혁명, 박임항계 반혁명 김동하계 반혁명 등과는 그 양상과 성격이 좀 다르다고 보겠다.
어든 군인사 관리상의 진통은 젼 총장 민대장의 「인사군상 문졔의 로와 나의 방침」(六四년 十一월 二○일 발표)으로 집약되고 있다.
「현 육군은 과거 어느 보다 인사졍에 있어 심각한 시련기에 직면다. 상위계급으로 올라갈수록 승진의 문이 좁아 심한 경율을 보인다. 진급, 보직, 젼속 등의 운동을 일삼는 자가 불소하다. 대령, 장성급은 상위 직위보직, 무편졔보직, 二중보직 등 곤란한 실졍이다」
군 당국 발표에 의하면 5·16혁명 직후 최고 회의의 공보실장을 지내다가 원대 복귀하여 육군정훈학교 부교장직을 맡고 있는 원충연 대령 등이 반국가음모를 꾀하다가 적발되어 민간인을 포함한 7명이 구속되었다 한다.
고참급 대령들인 이들은 진급에 누락되고 보직이 시원치 않은 데 불평하여 반국가음모란 어마어마한 죄과를 범했다는 것이다.
규모의 크고 작은 것에 차이가 있을 뿐 진급에 대한 불평으로 상관에게 대드는 등 하극상의 사례는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파티」 석상에서 또는 전방 단위부대에서 그 밖의 모임에서 등 얼핏 보기엔 대수롭지 않게 밝혀져 있다. 그러나 이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이 줄지어 생길 때 사태는 심상치 않게 된다.
특히 상명하복, 단결, 복종 등을 생명으로 하는 군부 내에 있어서는 더욱 위험한 풍조로 나타난다.
민기식 전 육군참모총장이 임기 만료 두 달을 앞두고 군복을 벗게 된 여러 원인 중에는 이 진급, 보직 처리에 대한 불평과 이에 대한 기민한 처리의 결여에 있다고들 한다.
지난 1월의 장성 진급 심사 때의 경우 준장이 되는 「케이스」에 추천된 대령 수는 360여 명으로 전 육군 대령의 3분의 1가량이 병을 다느냐 못 다느냐를 판가름했었다.
이들은 진급된 지 3년 이상 계급 정년인 9년급 고참들로 이중 행운의 별을 딴 대령은 불과 212명뿐이었다. 그러자니 불평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젊은 층이 비교적 많이 기용됨에 따라 고참들의 반발이 컸다. 심사위원들은 능력, 경력 외에 출신 기별 즉 연도별로 안배했다는 말이었으나 누락된 사람은 별수 없이 세대교체란 흐름에 밀려나기 마련이었다.
한편 보직에 있어서도 사람은 많고 자리는 넉넉지 못하니 일부 장성급들은 불만을 품었고 대령급 중에도 그러했다. 무보직, 무편제, 상위직, 하위자 보직 등이 그것이다.
육군 최고위층의 대인사이동의 이유의 하나가 된 이용 소장(전 강원도지사)은 5기생 동기 중 탈락된 대령들의 예비역 편입, 그리고 본인의 보직이 여의치 않아 공관에서 「컵」을 던지고 험한 말로 민 총장에게 대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앞서도 전방을 시찰 중인 민 대장에게 모포병 대령이 노골적으로 욕을 보였다.
군 고위 당국자들은 6·25 동란으로 갑자기 팽창, 거듭된 숙군에도 기형적으로 비대해지고 5·16혁명 후 정치에 참여했다가 원대 복귀하는 등 하나의 「비상기」를 거친 군으로는 인사 운영에 이만한 진통쯤은 있을 법한 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난맥인 인사를 본 궤도에 올려놓으려는 방침이 강행될 때 쇄신된 기풍에 맞서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은 당연하다.
김용배 총장이 취임할 때 그는 「군 통수권의 확립」을 외치며 군기 엄정을 내세웠다. 그런데 취임식 그날 밤 육군회관의 「파티」에서 통신감 심상웅 준장이 신·구 총장 앞에서 불평을 토했다.
「지난번의 진급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공교롭게 통신병과 대령 가운데 아무도 준장에 진급이 안 되고 보니 감으로서 체통이 안 선다는 이야기로 추측된다.
화가 치민 민 총장은 「그럼 그만두라」라고 호통하자 준장에 진급한 지 1년 3개월째 된 심 준장은 「좋습니다. 그만두겠습니다」라고 예비역 편입원을 냈고 며칠 후 수리되어 그는 군복을 벗었다.
이번 음모를 「대령을 포함한 영관급 장교들이 지난번에 있었던 군내 진급에서 누락되거나 현재의 보직에 대한 불평불만과 출세욕에 의한 과대망상에서 행해진 것」이라는 육군의 발표에 따를 경우 5·16 후 장도영계 반혁명, 박임항계 반혁명, 김동하계 반혁명 등과는 그 양상과 성격이 좀 다르다고 보겠다.
어떻든 군 인사 관리상의 진통은 전 총장 민 대장의 「인사군상 문제의 애로와 나의 방침」(64년 11월 20일 발표)으로 집약되고 있다.
「현재 육군은 과거 어느 때보다 인사정책에 있어 심각한 시련기에 직면했다. 상위계급으로 올라갈수록 승진의 문이 좁아 심한 경쟁률을 보인다. 진급, 보직, 전속 등의 운동을 일삼는 자가 불소하다. 대령, 장성급은 상위 직위 보직, 무편제 보직, 이중 보직 등 곤란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