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내용
휴가 나온 아들에게 한니라도 쌀밥을 먹이려고 자기 머리를 잘라 판 어머니의 모졍에 아들도 부대장도 젼우들도 함 울었다. 가난하지만 마음은 풍요한 이 어머니 반연옥(四十三세 영주군 영주읍 거주)씨의 사랑에 감동한 강조섭(二十二세) 二병의 부대장 부산주둔 졔八병참기지창장 이인섭 대령은 「강」 二병에게 특별 휴가를 주었고 젼우들은 성금을 거두어 귀향 봇짐 속에 넣어주었다. 「강」 二병은 지난 四월 七일 부대에 있다가 밖에도 멀리 고향에서 달려온 어머니 「반」씨의 면회를 받았다. 가난에 시달리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 강동(四十七세)씨가 위독하다는 것이다. 「강」 二병은 상관의 려로 곧 八일간의 특별휴가를 받고 집으로 달려갔다. 의사의 진단으로 아버지 「강」씨는 술이 도토리 죽만 먹은데다 과로로 위괴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를 간호하기에 앞서 아사 직젼에 있는 동 녯과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더 급다. 일거리를 찾아 헤기 시작하여 「불로크」 는 일을 다히 맡았다. 이틀 동안에 九장을 어 四五○원을 벌었다. 「강」 二병은 이 돈을 들고 어머니에게 달려가 죽이라도 여 먹자고 다. 며칠이 안 지나서 이나마 어졌다. 어머니 「반」씨는 집에 오자마자 식구 문에 허덕이면서 밥 한니 못 먹는 아들을 각하니 기막혔다. 「밥이라도 주자」는 결심을 하고 四○년을 가위질 한번 안한 머리를 풀어 싹독 잘랐다. 고물상은 三원을 주고 사갔다. 이 돈으로 쌀밥을 짓고 고기를 지졌다. 아들이 돌아온 날 밤 어머니는 기 얼굴로 상을 들고 들어갔다. 이상하게 각한 아들은 「어게 된 거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웃을 이었으나 「강」 二병의 눈엔 어머니 머리에 씌워 있는 수건이 아무도 림칙다. 이상한 육감이 올라 수건을 조심스례 벗겼다. 어머니의 머리는 조금 긴 단발머리였다. 아들과 어머니는 상머리에서 서로 붙안고 서러운 울음을 터렸다. 四월 十四일 휴가시간은 어느 다 지나갔다. 초조한 「강」 二병은 부대장과 선임하사 「박졍윤」 중사에게 집안 사졍으로 며칠 동안 못 돌아가겠으니 용서 달라는 사연을 었다. 「강」 二병은 十일간이나 부대에 귀대 못다. 부대장은 「박」 중사로 하여금 「강」 二병을 찾아가도록 다. 「영주」에 려온 「박」 중사는 「강」 二병의 한 사졍을 눈으로 보았다. 어머니가 머리를 은 것도 보았다. 그러나 부대로 돌아가야 다. 「강」 二병과 함 돌아온 「박」 중사는 부대장에게 사졍을 낱낱히 보고하고 젼우들에게도 젼다. 부대 안에선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거두어진 성금이 八쳔五원이 되었고 부대장 「이」 대령은 「강」 二병에게 二十五일간의 특별 휴가를 주고 집에 돌아가 웬만큼 졍리를 다음 오라고 일렀다. 「강」 二병은 지난 十일 집에 돌아오자 받은 성금으로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시작다. 「강」 二병은 十九일에도 「아이스케이크」를 팔면서 「그져 고맙습니다. 이 장사를 어머니에게 물려주고 갈랍니다」라고 말다. 어머니 「반」씨는 수건으로 머리를 가린 그 옆에 앉아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우는 듯 지키어보고 있었다. 「강」 二병의 휴가마감은 오는 六월 四일이나 아버지의 병은 차도가 없고 집안은 아직도 니를 잇지 못하지만 이거나마 놓고 나는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듯 무겁게 잡혔던 주름살이 펴진 듯 다. 각계에서 온졍의 금품 한편 이 보도를 들은 시민들은 二○일 이른 아침부터 이들 모자에 대한 격려와 금품이 몰려들어 하오 현 一만七쳔三원이 기탁되었다. 이날 등교하는 길로 단국중고교 一쳔五여명은 호주머니를 털어 五쳔三원을 모아 기탁고 이름을 밝히기 실어하는 유지는 五쳔원을, 「톌례비」 젼속가수 이금히 양이 二쳔원, 대영영화사 오석조씨가 五쳔원을 각기 맡겼다.
휴가 나온 아들에게 한 끼니라도 쌀밥을 먹이려고 자기 쪽머리를 잘라 판 어머니의 모정에 아들도 부대장도 전우들도 함께 울었다. 가난하지만 마음은 풍요한 이 어머니 반연옥(43세, 영주군 영주읍 거주) 씨의 사랑에 감동한 강조섭(22세) 이병의 부대장, 부산 주둔 제8병참기지창장 이인섭 대령은 「강」 이병에게 특별 휴가를 주었고 전우들은 성금을 거두어 귀향 봇짐 속에 넣어주었다. 「강」 이병은 지난 4월 7일 부대에 있다가 뜻밖에도 멀리 고향에서 달려온 어머니 「반」 씨의 면회를 받았다. 가난에 시달리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 강동태(47세) 씨가 위독하다는 것이다. 「강」 이병은 상관의 배려로 곧 8일간의 특별 휴가를 받고 집으로 달려갔다. 의사의 진단으로 아버지 「강」 씨는 술지게미, 도토리 죽만 먹은 데다 과로로 위궤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를 간호하기에 앞서 아사 직전에 있는 동생 넷과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더 급했다. 일거리를 찾아 헤매기 시작하여 「블록」 찍는 일을 다행히 맡았다. 이틀 동안에 900장을 찍어 450원을 벌었다. 「강」 이병은 이 돈을 들고 어머니에게 달려가 죽이라도 끓여 먹자고 했다. 며칠이 안 지나서 이나마 떨어졌다. 어머니 「반」 씨는 집에 오자마자 식구 때문에 허덕이면서 밥 한 끼니 못 먹는 아들을 생각하니 기막혔다. 「밥이라도 해주자」는 결심을 하고 40년을 가위질 한 번 안 한 쪽머리를 풀어 싹둑 잘랐다. 고물상은 300원을 주고 사 갔다. 이 돈으로 쌀밥을 짓고 고기 찌개를 지졌다. 아들이 돌아온 날 밤 어머니는 기쁜 얼굴로 상을 들고 들어갔다. 이상하게 생각한 아들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웃을 뿐이었으나 「강」 이병의 눈엔 어머니 머리에 씌워 있는 수건이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이상한 육감이 떠올라 수건을 조심스레 벗겼다. 어머니의 머리는 조금 긴 단발머리였다. 아들과 어머니는 상머리에서 서로 붙안고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4월 14일 휴가 시간은 어느새 다 지나갔다. 초조한 「강」 이병은 부대장과 선임하사 「박정윤」 중사에게 집안 사정으로 며칠 동안 못 돌아가겠으니 용서해달라는 사연을 띄웠다. 「강」 이병은 10일간이나 부대에 귀대를 못 했다. 부대장은 「박」 중사로 하여금 「강」 이병을 찾아가도록 했다. 「영주」에 내려온 「박」 중사는 「강」 이병의 딱한 사정을 눈으로 보았다. 어머니가 머리를 깎은 것도 보았다. 그러나 부대로 돌아가야 했다. 「강」 이병과 함께 돌아온 「박」 중사는 부대장에게 사정을 낱낱이 보고하고 전우들에게도 전했다. 부대 안에선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거두어진 성금이 8500원이 되었고 부대장 「이」 대령은 「강」 이병에게 25일간의 특별 휴가를 주고 집에 돌아가 웬만큼 정리를 끝낸 다음 오라고 일렀다. 「강」 이병은 지난 10일 집에 돌아오자 받은 성금으로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시작했다. 「강」 이병은 19일에도 「아이스케이크」를 팔면서 「그저 고맙습니다. 이 장사를 어머니에게 물려주고 갈랍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 「반」 씨는 수건으로 머리를 가린 채 그 옆에 앉아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배우는 듯 지키어보고 있었다. 「강」 이병의 휴가 마감은 오는 6월 4일이나 아버지의 병은 차도가 없고 집안은 아직도 끼니를 잇지 못하지만 이거나마 해놓고 떠나는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듯 무겁게 잡혔던 주름살이 펴진 듯했다. 각계에서 온정의 금품 한편 이 보도를 들은 시민들로부터 20일 이른 아침부터 이들 모자에 대한 격려와 금품이 몰려들어 하오 현재 1만 7300원이 기탁되었다. 이날 등교하는 길로 단국중고교생 1500여 명은 호주머니를 털어 5300원을 모아 기탁했고 또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는 유지는 5000원을, 또 「텔레비전」 전속가수 이금희 양이 2000원, 대영영화사 오석조 씨가 5000원을 각기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