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내용
공산당과 일졔의 종교 탄압에 굴하지 않고 싸웠던 한 「씨알의 죽음」이 영국과 미국에서 이졔 열를 게 되었다. 「한국 교회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성직자였다」는 고 손양원 목사가 六·二五 괴뢰군의 총탄에 순교한지 十五년 만에이다. 「씨알은 죽어서」(THE SEED MUST DIE)― 영국 IVF 출판부가 발한 번역본을 손에든 원작 「사랑의 원자탄」의 져자 안용준 목사(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신학교 총무과장)는 十三년 젼 「손」 목사의 를 쳐음으로 세상에 알렸을 보다 더 기다고 다. 미국에서도 「손」 목사의 가 너무나 성스럽고 극젹이고 한국젹 비극에 차있기 문에 완역을 거의 곧 이 나오게 되었다 한다. 「안」 목사는 이졘 한국의 위대한 순교자가 모든 영어 세계에다 신앙의 씨알을 심었다고 다. 「손」 목사는 한국 기독교 신자들로부터 한국의 성자라고지 숭앙을 받는 수난의 교직자였다. 그가 「여수」 「순쳔」 반란사건 두 아들의 살범을 사형 집 직젼에 구출하여 자기 아들로 삼은 일화는 이미 세계젹인 화졔로 되었다. 영역판에서도 일졔 신사 참 거부운동으로 六년간 투옥되었고 二十五년간의 나병환자 구졔 사업 에 환자들과 함 六·二五 인민군의 총탄에 쓰러졌다는 일 등 그의 일에 최고의 성칭을 보고 있다. 가장 부각된 졈은 투쳘한 「손」 목사 인의 기독교 졍신 아니라 그 가족의 한결같은 성직의식이었다. 좌익 학들에 총살된 두 아들 「동인」 「동신」(당시에 모두 중학들) 군은 「예수를 안 믿는다」고만 하면 면할 수 있는 죽음 앞에서 「나를 죽여도 신앙은 남는다」고 외쳤다는 목격자의 증언이었다. 그 살범 안선(현 三十六세)을 구출하여 지금 젼남 광양군에서 독실한 신앙활을 하게 한 목사의 실쳔, 오들의 피살젹 후 「한 원수」의 집에서 함 살며 찬송가를 워준 누이동 동회(당시 十五세)의 의지, 살범을 볼 마다 실신을 거듭하면서 「아들」쳐럼 귀여워하게 되기지의 어머니의 영육의 갈등 등… 「손」 목사의 가족은 세계 기독교 사상에 남을 만한 기독교 졍신의 화신들이었다고 찬양다. 안용준 목사가 「손」 목사의 실기에 착수한 것은 十八년 젼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면서부터였다. 그는 二년 동안 「손」 목사의 모든 젹을 조사고 반란사건 의 증인들을 찾아다녔다. 七여 장의 「사랑의 원자탄」 상하권, 「손양원 목사 설교집」 상하권 등을 출판하는 한편 한 「향」이란 졔목으로 희곡화하여 서울 중앙극장에서 상연한 일도 있다. 이쳐럼 많은 연원을 「손」목사에게 바친 열의를 그는 「손 목사는 하늘이 우리나라에 보 성자」라고 보기 문이라 고 「이 한국의 실쳔젹인 사랑은 한 세계에 널리 보급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료수집 중 충격젹인 격려를 「손」 목사의 아들로 로 어난 살범 「안선」으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가 안 목사의 실기를 쓰고 있는데 사실대로 쓰자니 자녜 이름이 문졔」라고 더니 당시 고려고등성경학교를 다니던 「안」 군은 「쓰십시요. 안 쎠도 나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요. 쓰더라도 나를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지 않습니」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눈물을 흘렸읍니다. 사형될 한 범인을 이쳐럼 훌륭한 신앙인으로 조한 손 목사의 위력에 감사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감사던 것입니다」 「안」 목사는 당시를 각하며 좁혔던 눈시울을 번 며 「이번 영역 출판을 계기로 한국의 기독교는 세계에 놀라움과 함 알려질 것이라」고도 다.
공산당과 일제의 종교 탄압에 굴하지 않고 싸웠던 한 「씨알의 죽음」이 영국과 미국에서 이제 열매를 맺게 되었다. 「한국 교회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성직자였다」는 고 손양원 목사가 6·25 때 괴뢰군의 총탄에 순교한 지 15년 만이다. 「씨알은 죽어서」(THE SEED MUST DIE)―영국 IVF 출판부가 발행한 번역본(원작은 「사랑의 원자탄」)을 손에 든 저자 안용준 목사(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신학교 총무과장)는 13년 전 「손」 목사의 생애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을 때보다 더 기쁘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손」 목사의 생애가 너무나 성스럽고 극적이고 한국적 비극에 차 있기 때문에 완역을 거의 끝내 곧 책이 나오게 되었다 한다. 「안」 목사는 이젠 한국의 위대한 순교자가 모든 영어 세계에다 신앙의 씨알을 심었다고 했다. 「손」 목사는 한국 내 기독교 신자들로부터 한국의 성자라고까지 숭앙을 받는 수난의 교직자였다. 그가 「여수」·「순천」 반란사건 때 두 아들의 살해범을 사형 집행 직전에 구출하여 자기 아들로 삼은 일화는 이미 세계적인 화제로 되었다. 영역판에서도 일제 때 신사참배 거부 운동으로 6년간 투옥되었고 25년간의 나병환자 구제 사업 끝에 환자들과 함께 6·25 때 인민군의 총탄에 쓰러졌다는 일 등 그의 일생에 최고의 성칭을 보내고 있다. 가장 부각된 점은 투철한 「손」 목사 개인의 기독교 정신뿐 아니라 그 가족의 한결같은 성직 의식이었다. 좌익 학생들에 총살된 두 아들 「동인」, 「동신」(당시에 모두 중학생들) 군은 「예수를 안 믿는다」고만 하면 면할 수 있는 죽음 앞에서 「나를 죽여도 신앙은 남는다」고 외쳤다는 목격자의 증언이었다. 그 살해범 안재선(현재 36세)을 구출하여 지금 전남 광양군에서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게 한 목사의 실천, 오빠들의 피살 직후 「끔찍한 원수」의 집에서 함께 살며 찬송가를 배우게 해준 누이동생 동회(당시 15세)의 의지, 살해범을 볼 때마다 실신을 거듭했다가「아들」처럼 귀여워하게 되기까지의 어머니의 영육의 갈등 등… 「손」 목사의 가족은 세계 기독교 사상에 남을 만한 기독교 정신의 화신들이었다고 찬양했다. 안용준 목사가 「손」 목사의 실기(實記)에 착수한 것은 18년 전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면서부터였다. 그는 2년 동안 「손」 목사의 모든 행적을 조사했고 반란사건 때의 증인들을 찾아다녔다. 700여 장의 「사랑의 원자탄」 상·하권, 「손양원 목사 설교집」 상·하권 등을 출판하는 한편 한때 「향」이란 제목으로 희곡화하여 서울 중앙극장에서 상연한 일도 있다. 이처럼 많은 연원을 「손」 목사에게 바친 열의를 그는 「손 목사는 하늘이 우리나라에 보낸 성자」라고 보기 때문이라 했고 「이 한국의 실천적인 사랑은 냉랭한 세계에 널리 보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료 수집 중 충격적인 격려를 「손」 목사의 아들로, 새로 태어난 살해범 「안재선」으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내가 안 목사의 실기를 쓰고 있는데 사실대로 쓰자니 자네 이름이 문제」라고 했더니 당시 고려고등성경학교를 다니던 「안」 군은 「쓰십시오. 안 써도 나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요. 쓰더라도 나를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형될 뻔한 범인을 이처럼 훌륭한 신앙인으로 개조한 손 목사의 위력에 감사했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안」 목사는 당시를 생각하며 좁혔던 눈시울을 번쩍 뜨며 「이번 영역 출판을 계기로 한국의 기독교는 세계에 놀라움과 함께 알려질 것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