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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고려사] 世家 卷第三十一 忠烈王 21年
- 작성자 정인지(鄭麟趾) 등
- 분류 고전자료 고도서
세자의 청에 따라 김방경에게 식읍을 내려주다[고려사] 世家 卷第三十一 忠烈王 21年1295년 12월 3일정인지(鄭麟趾) 등賜上洛公金方慶, 食邑三千戶食實封三百戶, 世子請之也.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에게 식읍(食邑) 3,000호와 식실봉(食實封) 300호를 내렸는데 세자가 청한 것이었다.2019.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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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
- 작성자 이승휴(李承休)
- 분류 고전자료 고도서
前中奉大夫都元帥推忠靖難定遠功匡靖大夫三重大匡僉議中贊上將軍判典吏事世子師致仕上洛郡開國公食邑一千戶食實封三百戶金方慶答滿月峯了了庵信和尙書 이승휴 李承休 a002 書簡類 書簡類 頃所賜兩則法語。常置牧牛子私記上面。玄換 相看。翫朱無斁。然根機陋劣。茫然討己鼻不著。 雖然。敢不銘佩。兼示偈子云。維摩方丈想茅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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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고려사] 列傳 卷第十七 諸臣
- 작성자 정인지(鄭麟趾) 등
- 분류 고전자료 고도서
첨의령(僉議令)을 더하고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 식읍(食邑) 1,000호 식실봉(食實封) 300호를 봉하였다. 하루는 선산(先山)에 성묘를 가겠다고 청하니[乞告上冢], 왕은 그 아들 김순(金恂)을 태백산제고사(太白山祭告使)로 삼아 그를 따르게 하였다. 고향에 이르러서는 친척과 옛 벗을 위해 며칠을 머물다가 일러 말하기를, “가을걷이를 할 때라 민의 힘이 쉴 틈이 없을 터인데, 어찌 오랫동안 너희를 번거롭게 하겠느냐?”라고 하고는 결국 돌아왔다. 〈충렬왕〉 26년(1300) 병으로 죽으니, 나이 89세였다.2021.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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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한국사료총서 제33집 [東史約 上]
- 작성자 이원익(李源益)
- 분류 근현대자료 도서(사료)
辛巳七年,이원익(李源益)한국사료총서 제33집 [東史約 上]2022. 10. 06辛巳七年,十八年都元帥金方慶等率師赴合浦.時, 諸道刻日督飛輓甚急, 民皆竄匿, 縣吏至有自縊死者.○ 時, 龍化院池在開京魚死, 伍允孚請罷全羅慶尙, 王旨別監王, 只罷公主食邑.元, 忻都, 洪茶丘等, 帥征東軍至.忻都等與王議事, 王南面, 忻都等東面, 自事大以來使臣與王東西相對, 至是, 忻都等不敢抗禮, 國人大悅, 忻都等遂向合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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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한국사료총서 제33집 [東史約 上]
- 작성자 이원익(李源益)
- 분류 근현대자료 도서(사료)
○王及公主獵于南京.尹秀朴義等導王遊田無所不至, 時, 世子謜年九歲, 忽泣下, 曰今玆百姓窮困, 父王何爲遠獵, 又見人衣破布衫負柴入于宮門, 使問之卽將作署其人也, 世子, 曰我美衣服而百姓若此於心安乎, 有宮奴取里中兒紙鳶以獻, 問, 汝安得此取諸人獻於我何哉, 卽還之, 相師天一, 相世子, 曰慈眼不喜鷹犬, 時, 朴義在側, 世子顧謂朴義, 曰每以鷹犬縱吾君者, 此老狗也.中贊上洛公金方慶致仕.賜食邑一千戶, 食實封三百戶, 加判典理司事, 方慶時年過七十而頭髮不白, 耐寒暑無疾, 國有大議王必咨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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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일기국역총서【19-21】 [국역 매원일기 1-3]
- 작성자 김해(金垓), 김광계(金光繼)
- 분류 근현대자료 도서(사료)
음서(蔭敍)로 벼슬길에 나가 상장군(上將軍)·행영중군병마원수(行營中軍兵馬元帥) 등을 역임하고, 상락군 개국공 식읍 일천호 식실봉 삼백호(上洛郡開國公食邑一千戶食實封三百戶)에 봉해졌다.의 후손인데, 선친의 산소 자리가 상락공의 묘에 아주 가까이 붙어 있어서 강제로 천장하도록 하려 한다고 하였다. 걱정되고 답답한 심정 이루 말할 수 없다.○밤에 우레가 크게 치고 비가 쏟아졌다.9월 8일윗마을에 가서 여러 친지를 만나 보고 왔다.9월 9일기운이 몹시 고르지 않았으나 병을 무릅쓰고 사당에 전奠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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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민현구
- 분류 사전ㆍ공구 기타
그 후 중찬(中贊)에 임명되어 수상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280년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원나라로부터 중선대부(中善大夫)·관령고려국도원수(管領高麗國都元帥)의 직임을 받았다. 1281년의 제2차 일본 정벌에 주장(主將)으로 참여했으나 또 다시 실패하였다.1283년 삼중대광 첨의중찬 판전리사사 세자사(三重大匡僉議中贊判典理司事世子師)로 치사(致仕)하였으며, 이어서 첨의령(僉議令)이 가직되고 상락군 개국공 식읍 일천호 식실봉 삼백호(上洛君開國公食邑一千戶食實封三百戶)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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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한영우
- 분류 사전ㆍ공구 기타
삼사좌사(三司左使)·동판도평의사사(同判都評議司事)로 있다가 여러 장상들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해 개국공신 1등에 봉해지고, 문하시랑찬성사 겸 판상서사사 겸 병조전서응양상장군(門下侍郎贊成事兼判尙瑞司事兼兵曹典書鷹揚上將軍)에 올랐다.같은 해 12월 문하우시중에 제수되고, 상락백(上洛伯)의 작위와 식읍 1,000호 및 식실봉(食實封) 300호를 받았다. 1396년(태조 5)에 오도병마도통처치사(五道兵馬都統處置使)가 되어 대마도를 정벌하였다.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 백관을 거느리고 대궐에 가 적장(嫡長)을 후사로 세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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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디지털부산문화대전
- 작성자 박상기
- 분류 사전ㆍ공구 기타
원종과 충렬왕 때 정당문학을 지내고, 명장 김방경(金方慶)을 따라 일본 정벌에 공을 세워 시중에 오르고 기성 부원군(岐城府院君)[기성은 거제의 옛 명칭]에 봉하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