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사전ㆍ공구 기타

    ≪육가잡영≫은 위항문학의 초기를 대표하는 업적이다. 다음 세대의 위항시인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이후 약 200년간 활발하게 전개된 위항문학은 개인적인 창작활동보다는 무리를 지어 시사에 참여하거나 동인그룹을 형성함으로써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다.직접적으로는 이들의 문하에서 또는 이들의 자손에 의하여 다음 세대의 위항문학이 더욱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조선평민문학사』(구자균, 문조사, 1948)「육가잡영해제(六家雜詠解題)」(『여항문학총서(閭巷文學叢書)』 6, 여강출판사, 1986)

  • 상위자료 디지털용인문화대전
    작성자 홍순석
    분류 사전ㆍ공구 기타

    『육가잡영(六家雜詠)』 홍순석, 「옛 문헌 속의 용인」8(『용구문화』10, 용인문화원, 1987)

  • 작성자 고경식
    분류 사전ㆍ공구 기타

    이때에 나이가 70여 세였다.75세 때인 1660년(현종 1)에는 교유하던 위항시인인 정남수(鄭柟壽)·남응침(南應琛)·김효일(金孝一)·최대립(崔大立)·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동인지 『육가잡영(六家雜詠)』을 간행했다. 그는 위항시인들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았으며 문하에 훌륭한 시인들을 많이 길러냈다.정확한 몰년은 알 수 없다. 최기남의 시 가운데에 1668년(현종 9) 83세에 쓴 시가 있어서 그의 몰년은 그 뒤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에 대하여서도 알 수가 없다.최기남의 시는 당시(唐詩)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다.

  • 분류 연구성과 기타

    閭巷人들의 한시집인≪六家雜詠≫(숙종 11:1685),≪海東遺珠≫(숙종 38),≪昭代風謠≫(영조 13:1737),≪風謠續選≫(정조 21:1797)의 간행이 우선 그 문학적 징표이다. 17세기에 劉希慶·白大鵬 등에 의해「風月香徒」라 자처하는 시사가 생겨난 이후 18·19세기에는 洛下詩社·松石園詩社·西園詩社·稷下詩社 등 수많은 여항인 시사가 결성되어 활동을 벌였다.  한편 상업의 발달과 시정문화의 성장은 민속극·판소리와 여러 가지 연행예술이 성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 분류 연구성과 기타

    崔奇男(1586∼1668), 南應琛 등≪六家雜詠≫의 시인이 17세기 전반에 등장하고 뒤이어 17세기 후반에 최기남의 아들인 崔承太, 林俊元 등 洛社 시인들이 활동하였다. 17세기 말엽에는 洪世泰(1653∼1725), 高時彦(1671∼1734), 鄭來僑(1681∼1757) 등이 등장하여 18세기 초중엽까지 활동하며 중인문학을 발전시켰다. 交遊已絶嵇康懶 게으른 혜강처럼 교유를 끊고 禮法全疎阮籍狂 미친 완적처럼 예법을 무시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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