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자료 한국의 금석문
    분류 고전자료 금석문자료

    이차돈순교비(異次頓殉敎碑) 통일신라시대 818년(헌덕왕 10년, 당(唐) 헌종(憲宗) 원화(元和)13년) / 817년(헌덕왕9년, 당(唐) 헌종(憲宗) 원화(元和)12년)이차돈순교비는 본래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백률사터에 있었던 것인데,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순교비는 527년(법흥왕(法興王) 14)에 불교의 공인을 위하여 순교이차돈을 추모하기 위하여 817년(헌덕왕 9) 또는 818년(헌덕왕 10)에 건립하였으며, 비문을 지은 사람과순교비는 모두 6면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면에는 이차돈순교할 때 목에서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에 꽃비가 흩날리는 장면을 음각으로 새겼다.)』에 전하는 이차돈순교 관련 기록과 크게 차이가 없다.

  • 상위자료 통일신라 비문
    작성자 南東信
    분류 고전자료 고도서

    栢栗寺石幢記 : 槪觀gskh_005_0010통일신라 비문南東信비문통일신라槪觀 이 석당기는 ‘異次頓殉敎碑’ 또는 ‘異次頓供養幢’이라고도 한다.신라 法興王 14년(527) 불교공인을 위해 순교이차돈을 추모하고자 건립하였는데, 비의 조성연대는 「元和帖」에 의하면 818년(憲德王 10년)이며, 『三國遺事』原宗興法條에 의하면석당은 6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면에는 이차돈순교할 때 목에서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장면이 음각되어 있으며, 제2~6면은 면마다 井間을 치고 7행×25자씩이차돈순교도: 제1면 제2면 결락 ?~제3면 1행 建釋遺法: 법흥왕의 불교흥포 의도 時有一子~제4면 5행 王之□□ □□必然: 법흥왕과 이차돈의 대화 □□衣□~제5면 6행 二百五十三: 군신간의 토론과 이차돈의 죽음. 

  • 상위자료 삼천리
    작성자 李光洙, 朴花城, 金末峯, 方仁根, 沈薰, 李泰俊, 李無影
    분류 근현대자료 연속간행물

    를 보고 「異次頓의 死」(朝鮮日報)의 作者로서 春園 나는 순교자를 좋아합니다.그래서 나는 순교자를 테마로 글을 써보러는 생각이 늘 있어서 예전 순교자라는 脚本도 하나 써보고 또 天主敎祖의 순교도 소설로 써보고 또 사정있어 끝은 못내고 말았지만은 東亞日報에 金十字架라는 소설도 썼읍니다.異次頓을 쓰게 된 것도 그런 동기에서 입니다.異次頓은 조선의 역사에서는 첫 순교자었읍니다. 그것이 내 흥미를 끈 것이었읍니다. 나는 천주교도의 數萬명 순교자들을 존경합니다.그 역사를 잘 알 수 없음이 恨이어니와 조선인 수만의 순교자를 내었다는 것은 不朽의 자랑으로 알며 내 혈관에도 이러한 순교자의 피가 흐르거니하면 마음이 든든하고 큰 긍지를 느낌니다.

  • 상위자료 동광
    작성자 文一平
    분류 근현대자료 연속간행물

    다만 3國文明의 中闃인 佛敎를 敍述할 때에 그의 最初 殉敎者로서 寶血을 흘리어 法運을 열은 新羅 異次頓의 그 受刑하는 刻像이 慶州 博物館에 今日까지 依然히 보존되어 잇슴에 불구하고

  • 작성자 조경철(연세대학교)
    분류 연구성과 기타

    이차돈순교연대에 대한 재검토Rediscussion about the date of Echadon[異次頓]’s Martyrdom이차돈순교연대에 대한 재검토조경철(연세대학교)한국고대사탐구학회한국고대사탐구그렇다고 『삼국사기』 법흥왕의 모든 기록이 1년 늦추어 진 것은 아니다.이차돈순교한 정확한 연대는 신라시대 알려지지 않았고 그나마 남겨있는 자료도 528년이라고 하고 있다.하지만 고려의 『해동고승전』에서는 이차돈순교를 529년이라고도 할 정도로 이차돈순교연대는 정해지지가 않았다.그러나 신라 말 고려시대 선종이 유행하면서 이차돈순교연대는 달마가 중국에 선종을 전한 사실과 맞물려 해석되었다.달마가 중국에 온 527년을 이차돈순교 연대와 맞추어 해석한 것이다.

  • 작성자 김태형(림박물관)
    분류 연구성과 기타

    이차돈 순교유적과 유물에 대한 고찰Study of the Martyrs Ichadon remains and monument이차돈 순교유적과 유물에 대한 고찰김태형(림박물관)불교미술사학회불교미술사학특히 이차돈 순교성지로 알려진 백률사에 대해 객관적인 검증이 없이 묘비의 발견 장소로 둔갑되고 결국에는 이차돈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는 ‘자추사’와 동일한 사찰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여추모사당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더욱이 『삼국유사』는 차제하더라도 조선 초 경주에서 승려생활을 했던 김시습의『梅月堂集』에서 백률사와 이차돈순교로 건립된 흥륜사와 관련된 시「柏栗寺樓登眺」,「柏栗寺參玉版師」,「遊金鰲錄-興輪寺址」에서 흥륜사가 이차돈순교로 창건되었음을 밝혔지만 백율사와 관련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백률사가 이차돈순교와는〈이차돈순교비〉의 발견과 관련된 일련의 자료를 통해 〈순교비〉의 발견 장소가 건립 장소였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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