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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목은집(牧隱集)
- 작성자 이색(李穡)
- 분류 고전자료 고전국역서
이날 서북면 원수(西北面元帥)가 행군(行軍)을 떠나다.임정기이색(李穡)산 아래 깃발은 도성을 가리키는데 / 山下旌旗指鎬京 광암동 골짝은 소리 없이 적적하여라 / 光巖洞壑寂無聲 전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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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고종실록 32권[1894년]
- 분류 고전자료 고전국역서
나머지 무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으며, 총알·깃발·북 등의 물건과 소와 말 30필을 획득하였습니다.【분류】 사상-동학(東學) / 외교-일본(日本) 兩湖都巡撫營以"卽見敎導所領官李軫鎬所報, 則‘去十月二十六日, 與日兵大隊及鎭南營兵丁, 合勢進發, 到懷德地, 匪徒幾千名, 隔水成陣, 故混戰一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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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국민보
- 분류 근현대자료 연속간행물
있어서 능히 대포구멍에 물을 나게 한다 하고 그 뒤부터는 관군이 동학군의 깃발만 보고 숨을 쉬지 못하고 도망하였었다.지금까지도 세상 사람들은 그때에 동학군이 인심을 선동을 시키느라고동학란이 일어나자 그 집의 종들은 부자형제 할 것 없이 다 동학당에 들어갔다.신출귀몰동학군의 정탐그때에 동학군의 활동은 어찌나 컷던지 각 지방에 아전관속은 모두 동학군의 심복이 되어서 관군의 허실을 탐보하였다.전봉준이 이인의 통천을 하게 된 것도 이 정탐에시에 상인을 먼저 잡아서 죽이고 장게취게로 동학군이 그 복색을 하고 시중으로 들어가서 불의에 습격을 하니 관군이 다 달아나고 그 장터가 동학군의 손으로 돌아왔다.도망하고 통관 민영승은 경기전 위패를 가지고 위봉산성으로 도망함으로 나머지의 관군과 민병이 다 문을 열고 동학군을 맞아 들이니 당시 동학군의 세력은 실로 당당하여 만산편야에 깃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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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국민보
- 분류 근현대자료 연속간행물
까닭이냐 한즉전봉준은 웃으면서 하는 말이작은 청을 아니 하는 사람은 큰 청이 있는 까닭이라 하니 기민한 대원군은 벌써 눈치를 차리고 밀실로 불러들여 자세히 물으니전봉준은 그제야 동학당의만일에 동작강 까지만 깃발을 날린다면 나는 당장에 관병과 내응하여 궁중 부중을 점령하고 친히 동작진 까지 영접하마고 까지 하였다.그러나 변하기 쉬운 것은 정치가라 처음에는 대원군이그와 같이 언약을 하였으나 동학군이 의병의 관계로 북진을 못하고 일·청(일본·청국) 두 나라의 세력싸움에 자기가 또한 일본 공사 대도규개의 지도 하에 다시 정국에 임하여 제三차로또 자기가 동학당과 암통한 것이 세상에서 알게 되면 전일 임오군란 때의 일이 소소한 고로 자기에게 책임문제가 있을까 하여 전연히 냉정한 태도를 일군의 세력에 의하여 동학군을 토벌하였다그러나 이 동학란 때에는 곽재우보다도 더 용맹스럽고 신기한 소년 장군이 있었다. 충남 예산군 신례원 접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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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자료 한국구비문학대계(2차)
- 작성자 나경수, 서해숙, 이옥희, 편성철, 김자현
- 분류 멀티미디어자료 음성자료
중앙군의 개입으로 동학군이 점차 패퇴하여 결국 장흥에서 모아졌는데, 석대뜰에서 일본군과 관군의 대전투가 벌어졌으나 동학군이 몰살하게 된다.그 당시에 동학군을 진두지휘한 이소사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결국 일본군에 잡혔으나 모진 고문을 당해도 굴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본문] 그 다음에 인제 동학 그~ 농민혁명 잘 아시겠지만, 1894년에 고흥군수 정~ [잠시 생각한다] 머 누구여?동학농민군은 세만(숫자만) 불렸지. 머~ 무기 체제도 열악하고, 전술적, 전략적으로 부재하고.근디 그때 인자 이~ 그 뒤로 발굴된 자료를 보니까, 20세가 못된 이소사라고 하는 여자가 소복을 입고 백마를 타고 깃발을 들고 그~ 동학군 선두에서 이러케 그~ 독전[[獨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