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고전자료 고도서

    陀水가 곧 蛇水라면 蓋蘇文의 戰勝이 薩水大捷인데 곧 蛇水가 薩水요, 薩水가 곧 淸川江이 된다. 그러면 主戰地를 龜州라고 할 때 淸川江 以北 鴨綠江 以南 즉, 江東六州之地가 된다. 그렇다면 地形上으로 보아 茶水가 혹 鴨綠江支流인 삼교천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二河之間은 곧 淸川江 以北 삼교천 이남인 龜州地方이 될 것이다.≪參考文獻≫『高麗史』卷4 「世家」4 顯宗 9年條; 卷94 「姜邯贊列傳」『高麗史節要』卷3 顯宗元文大王 9年條.

  • 분류 고전자료 고도서

    陀水가 곧 蛇水라면 蓋蘇文의 戰勝이 薩水大捷인데 곧 蛇水가 薩水요, 薩水가 곧 淸川江이 된다. 그러면 主戰地를 龜州라고 할 때 淸川江 以北 鴨綠江 以南 즉, 江東六州之地가 된다. 그렇다면 地形上으로 보아 茶水가 혹 鴨綠江支流인 삼교천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二河之間은 곧 淸川江 以北 삼교천 이남인 龜州地方이 될 것이다.≪參考文獻≫『高麗史』卷4 「世家」4 顯宗 9年條; 卷94 「姜邯贊列傳」『高麗史節要』卷3 顯宗元文大王 9年條.

  • 상위자료 선조실록 39권[1593년]
    분류 고전자료 고전국역서

    【분류】 과학-지학(地學) / 군사-병참(兵站)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註 195] 고구려 때에 성첩이 비록 낮았더라도 옛날 수나라 군사가 여기에서 혼쭐이 났었던 일 : 살수 대첩(薩水大捷)을 말함. ○ 上敎政院曰: "予有愚意, 玆諭于卿。 予跋涉之際, 一路山川形勢, 靡不有意諦視。 平壤以西, 敲兵皆可長驅, 而有城池之邑有三, 曰安州, 曰定州, 曰義州而已。 定州、義州城非據險, 數尺殘堞, 一趯可(倒)〔到〕 ; 定州則竝失其制, 皆不足恃也。 唯安州, 前臨大江, 城基亦頗高險。 麗堞雖殘, 隋魂可想。

  • 상위자료 별건곤
    작성자 文一平
    분류 근현대자료 연속간행물

    움즉이어 水陸으로 暴風迅雷 가티 쏘다저 오는 그 猛烈한 威勢는 高句麗에 대하야 完然히「泰山壓卵」의 槪가 잇섯지만 이미 攻守의 大策이 확정된 高句麗의 君臣은 조금도 驚懼함이 업시 談笑사이에 從容히 그 寄略을 옴기어 먼저 敵을 內地에 깁히 誘致하야다가 우리네 防備의 물샐틈도 업시 嚴密함을 보이어 그의 心膽을 서늘케한 후 다시 婉辭로 달내여 그네 스스로退軍하게 될 적에 四面에서 一齊히 일어나는 우리 伏兵은 마치 陷穽에 든 虎狼을 잡는 모양으로 重圍에 빠진 隋군을 습격하야 淸川江 우에서 모조리 죽인 이것이 곳 우리 歷史에 일홈 놉흔 薩水大捷

  • 상위자료 공립신보 08월
    작성자 공립신보사
    분류 근현대자료 연속간행물

    東國史譚, 乙支文德薩水大捷1908.08.19.08월19일 乙支文德2014.10.06.

  • 상위자료 공립신보 08월
    작성자 공립신보사
    분류 근현대자료 연속간행물

    東國史譚, 乙支文德薩水大捷1908.08.19.08월19일 乙支文德2014.10.06.

  • 상위자료 한국구비문학대계(2차)
    작성자 @심상교, @손화영, @이명희, @최연봉
    분류 멀티미디어자료 음성자료

    을지 문덕의 살수대첩 @조사자 : 귀주 대첩, 한산대첩 예 #제보자 : 그 다음에 귀주 대첩 한산대첩.. 그런데 귀주대첩을 고마 강감찬 장군이 거란족을 물리쳤다 그런것만 잘 알지만은 또 그 그때 고려 현종 때 국내외 적으로 안정이 되게 만든게 귀주대첩이에요. 그러니까 현종의 아들이 누구냐하면은 현종이 8대 임금이고 9대 임금이 덕종입니다. 10대 임금이 또 현종의 아들인 정종이라예 11대 임금이 그... 세 번째 아들인 문종이거든요.

  • 작성자 서영대
    분류 사전ㆍ공구 기타

    [개설]살수대첩을 비롯한 고구려와 수나라의 일련의 충돌은 4세기 이래로 분열을 거듭하던 중국을 수나라가 통일함에 따른, 동아시아 세력권의 재편성과정에서 나타난 충돌의 하나였다.다시 말해 중국의 남북조와 북아시아 유목민세계의 돌궐, 그리고 고구려·백제·신라 등을 축으로 편성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589년(평원왕 31)수나라의 남북조통일과 팽창에 따라 파괴, 재편성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 편성되어야 할 국제질서에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투쟁의 하나가 바로 고구려와 수나라의 충돌이었다.

  • 작성자 김선근
    분류 사전ㆍ공구 기타

    [내용]이 절의 창건은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살수대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612년(영양왕 23)에 을지문덕이 청천강 남안(南岸)에서 수나라의 대군을 쳐부술 때, 7인의 승려가 옷을 입은 채 유유히 걸어 청천강을 건넜다. 이에 속은 수나라 대군이 일시에 강을 건넜으나, 수심이 깊어 물에 빠져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 싸움에서 크게 패한 수나라 군사는 물러가고, 일곱 승려의 신묘한 업적이 세상에 전해지자 이를 기리기 위하여 성 밖에 절을 짓고 칠불사라 하였다.

  • 분류 사전ㆍ공구 연표

    ch_012_0612_07_00_0010 ch ch_012_0612_07_00 수나라 우문술(宇文述)이 지휘하는 별동부대 30만 명이 평 0612-07-99L0 수나라 우문술(宇文述)이 지휘하는 별동부대 30만 명이 평양성(平壤城)에서 철수하던 중 살수(薩水)에서 고구려 군의 반격으로 전멸함( 살수대첩 ) ≪삼국사기≫, <열전> 을지문덕 살수대첩 민족기록화 전쟁연표_전투

  • 작성자 남재철(명지대학교)
    분류 연구성과 기타

    정세 속에서 조선왕조 창업에 참여한 權近, 趙浚 등이나, 조선 후기에 임병양란으로 인한 민족적 존립의 위기 상황 속에서 국력을 회복해가던 시기에 활동한 吳光運, 李匡師, 李令翊과 같은 시인들은 모두 살수대첩과 을지문덕을 시화한 작품을 통해서 우리 민족에게는 살수대첩과 을지문덕의 공적을 되새김으로써 민족적 자부심을 불러일으켜 민족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고자 하였고, 국적을 초월하여 권력자들에게는 무력을 남용하여 망국을 초래한 수나라 양제를 반면교사로 삼아 인의의 도에 기반을 둔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도록 촉구하였다.This essay

  • 작성자 남재철(명지대학교)
    분류 연구성과 기타

    칠불전설의 자세한 내막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통해 문헌에 최초로 나타나는데, 이는 諺傳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살수대첩의 전황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칠불전설은 언전이 아닌 鐘銘의 기록을 통해서도 전승되고 있는데, 이 종명의 기록들 역시도 전설의 유전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서, 역사적 사료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칠불전설의 편린이 한시에 수용된 것은 김시습의 「七翁仲」에서가 최초이다.

  • 분류 연구성과 기타

    이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서도 사용되었다.  넷째, 게릴라전술이 동원되었다. 적과 직접 대결을 피하고 숨어서 기회를 엿보다가 적의 해이한 틈을 타서 습격하여 자주 적을 괴롭히는 전술이었다. 성문을 닫고 지키다가 성문을 열거나 성벽을 타고 내려가서 급습하기도 했다.  그 어느 전술이든 城을 중심으로 침입한 적을 격퇴시키는 守城戰이 고구려 전술의 기본이었고 이것은 이후 대당전쟁에서도 거의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수의 침입은 극복했으나 곧 이은 당의 건국으로 고구려는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확인

내 서재에 보관하시겠습니까?

확인

자료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내 서재로 이동하시겠습니까?

확인

오류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나의 오류목록으로 가시겠습니까?

확인

확인

수정하시겠습니까?

확인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확인

확인

확인

확인

확인

확인

확인

외부데이터베이스는 지원하지 않는 기능입니다.

확인

내 서재에 보관하시겠습니까?

확인

자료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내 서재로 이동하시겠습니까?

확인

오류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나의 오류목록으로 가시겠습니까?

확인

확인

수정하시겠습니까?

확인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확인

확인

확인

확인

확인

확인

확인

외부데이터베이스는 지원하지 않는 기능입니다.